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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실장 Oct 20. 2020

낙태죄에 관하여..

금주의 이슈 때리기.. (10월 11일~10월 17일)

강남역 사거리.. 

주말이면 나이 불문, 여성과 남성들이 이쁨을 '뿜 뿜'하고, 시끌벅적하게 모이는 곳. 이곳에선 최근 한 노동단체가 노동신문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임시판매대와 그 판매대 밑에 숨어 있는 작은 검은색 스피커를 통해, 낙태 및 미국의 대선, 그리고 노동환경과 관련된 녹음방송을 끊임없이 들을 수 있다. 행여나, 만나기로 한 지인이 조금 늦게 되어 역 앞에서 기다리기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방송의 내용을 귀에 딱지가 들도록 듣게 된다.  아무리 휴대폰 안에 있는 월드와이드웹 세상에 몰입을 하고, 숫자 '1'이 지워지지 않는 노란색 창에 글씨를 매우 쳐도, 귀에 맴도는 그 소리를 거스를 순 없다. 

지난주 주말. 말 그대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강남역 사거리. 녹음방송의 목소리가 여성이었기 때문일까. 유독 낙태에 관한 그들의 짧은 메시지가 강하게 들려왔다. 





'낙태'

우리는 이 단어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종교단체의 해석을 늘 '수학의 정석'처럼 느껴왔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낙태와 관련된 개인들의 생각들은, 윤리 시간에 배워왔던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범이나 예절과 같은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찬반 논리에 관한 목소리는 아주 명료하고 또 명확하다. 



'무분별한 낙태 시행'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은 '태아'에 포커싱이 되어 있다. 태아가 아기가 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태아이기에, 비록 자기 결정권을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똑같이 존중되어야 할 한 생명이 국가에 의해서 결정될 수는 없으며, 낙태죄가 사라지면 무분별한 임신이 일어나, 임신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대체적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신의 영역'이라고 까지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반대의 논리가 억지스럽지는 않다. 모두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가볍게 여기는 풍조'의 기준은 무엇일까? 혹시 그 가볍다는 표현이 가볍게 성관계를 하여 갖게 된 임신 사실을 SNS에 "정말 운이 없어"정도로 알리고, 병원에서 낙태하고 난 뒤 병원복을 입은 모습을 인증샷으로 남겨 SNS에 올리는 정도의 가벼움을 표현하는 걸까? 한국사회에서? 너무 많이 앞서갔다.. 차라리 '낙태'를 해결책으로 성폭행을 일삼는 성폭행범들의 증가를 논하는 게 훨씬 가능성이 높은 현실일 것이다. 

최근의 한 여성이 '당근 마켓'에 신생아를 20만 원에 판매한다는 정말 기이한 일이 있었는데, 이 여성이 이런 기이하고 미친 행동을 한 것이 사회적 규범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냥 그 사람은 기이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낙태를 밥먹듯이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낙태죄를 폐지하여 발생하는 보편적인 폐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극소수의 행동이 보편화되어 정설이 될 수는 없다. 


'낙태는 살인이다'

태아를 온전한 한 생명(사람)으로 보는 기준이 각기 다르지만, 이번 결정에서는 14주를 기준으로 하였다. 태아가 한 생명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한 생명에게 관점이 치우쳐지는 것이 아쉽다. 임신을 얘기할 때, 거론해야 할 생명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아이는 분명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팩트다. 특히나, 교육과 부동산에 상당한 기회비용이 매몰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경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고 크다. 비단, 비용만 문제이겠는가. 사회적, 정신적인 측면은 아예 측정불가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 생명을 온전히 살리고 양육하기 위해, 다른 한 생명은 사망선고와 같이 느껴질 만한 큰 정신적/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낙태죄는 한 생명만을 고귀하게 여기어, 다른 한 생명에게 '살인자'라는 최악의 죄로 심판되는 일이다. 


'보육의 짐'

출산율이 낮은 지금, "낙태는 더욱 출산율을 떨어뜨릴 것이다" 맞는 말이다. 출산율이 1%가 되지 않는 지금, 낙태가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면 출산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논지는 파도가 크게 치는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지고는, 돌멩이 때문에 파도가 더 커졌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보육원을 실제로 겪어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골 스토리로 TV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을 봐도, 열악하고 어려운 상황을 이해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부모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불편한 시선들 그리고, 두부모라 할지라도 겪게 되는 그 시나리오들을 이겨낼 만큼 우리 사회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인가? 만약 그렇다면 출산율을 위해 우리는 낙태죄를 합법화해야 할 것이나, 아쉽게도 우리 삶은 그렇지 못하다. 


 



반대로, 

찬성하는 쪽은 당연히 '개인의 결정권'을 중심에 두고 있다. 원하던 임신이든, 원치 않던 임신이든 한 여성의 결정을 국가가 침해해선 안된다는 논지이다. 문제제기를 하는 데 있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인식의 문제를 대두시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데, '여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강조되는듯한 것은 페미니즘을 불러일으켜 또 다른 편 가르기가 될까 우려스럽지만, 임신에 있어서만큼은 여성이 주체이니, 편가르려는 시도는 트집잡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이다. 너의 몸도 아니고, 이웃의 몸도 아니고, 국가의 몸은 더욱 아니다. 꼭 필요한 치료도 환자가 거부하면 강제로 할 수 없고, 장기기증서약도 건강할 때 미리 하고, 연명치료 중단도 미리 절차를 밟아 놓는 시대이다. 자신의 생명도 결정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자기 몸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에 '범죄자'라 낙인찍히고,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 말이 되는가.. 





지난해 나태 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이후 1년의 시간이 지났다. 1년 동안 달라진 것은 없고, 조금의 진전도 없는 것 같다. 아쉽게도 충분한 논의는커녕 사회적 공감대도 얻어낸 쪽은 없다. 또 시간만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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