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실장 Jan 18. 2021

니클의 소년들

2021_02 (열일곱 번째 서평)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 질문에 "From KOREA"라고 답하면 korea에 대해서 잘 모르는 유럽인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아시아는 japan과 china만 있을 뿐, korea는 그저 그들이 오랜 시간 기억하고 물려받은 '더럽고 못 사는 무지한 아시아'에 잘 알지 못하는 나라였다. 그런 그들에게, 당시의 내 꼬락서니도(당시 키만 한 배낭을 메고 유럽 이곳저곳에서 무전취식을 하던 배낭여행객 몰골을 가지고 있었음.) 그 인식을 확신시켜주는 꼴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korea'에 왠지 미안해진다.


배낭여행을 다닐 때나 지금이나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여전히 긴장된다. 별것 아닌 말에 멋쩍게 웃기도 하고, 조금 길다 싶은 질문에는 일단 크게 웃으며 시간을 벌고는 머릿속으로 내뱉을 말을 정리한다. 그나마 내뱉은 영어는, 발음이나 문장이나 세련되지 못하고 아주 촌스럽다. 10개월 동안 유럽의 배낭여행을 하며 사용한 영어라고는, 유럽 여러 도시에 자신은 절대 홈리스가 아닌 '자유사상가'라 칭하는, 누가 봐도 홈리스인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전부이니 내 영어는 여전히 저렴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곤 했다.


일단, 언어에 자신감이 없어서였을까? 

자신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Street trip(길바닥 여행)에 대한 나름의 내공(?)으로 파란 눈 가진 외국인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여행 중에 인종차별을 받았음에도 상처를 받거나, 문제 삼지 않고 가볍게 묵인해버린 기억들이 많다. 내가 반칙을 한 것도 아닌 정당한 요구에 대한 답이 분명 '거절'이었음에도 그 '거절의 이유'가 내가 가진 피부색, 머리색 등의 때문이라는 것에 크게 자존심이 상해 격분했던 기억은 없다. 충분히 페어 하지 않은 것이고, 잘못된 것이었는데도 그 차별에 대한 반감은 그렇게 크지 않다.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이 작은 이유를, 그동안은 언어적 자신감 결여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고 그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2020년대에 업무상 해외출장을 가면(물론 배낭여행객의 차림과 넥타이를 맨 비즈니스맨의 모습은 다르지만) "from korea"로 답변한 나는 japan과는 비슷한, china와는 차별화된 대우를 받는 느낌이지만, 여전히 아시아인을 낮게 보는 외국인은 많이 존재한다. 지금도 몇몇 스포츠 경기에서 유명선수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전 세계 팬들에게 욕을 먹거나, 협회에서 처벌을 받는 경우가 크게 이슈 되는 것을 보면, 인종차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같은(솔직히 인정해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 그 차별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인식 부족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책 '니클의 소년들'은 1960년대 흑인이 차별을 받던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착하고 성실한 주인공 엘우드가 우연한 사건으로 니클이라는 감화원(소년원과 비슷한 이미지의 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겪게 되는 이야기다. 그곳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있고, 부당한 대우가 있고, 그리고 폭력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 희망은 없다.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어두울 것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도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친다. 비록 평론가는 아니지만,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문체는 뭔가 세련된 느낌이고, 계속 읽어나가면서 느낀 감상이지만, 플롯도 너무 좋다는 감탄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소장각'이다. 


솔직히 우리는 '흑인 인종차별'에 공감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어두운 35년의 역사로 인해서, '나치'에 대한 반감 공감력이 더 좋을 것이다. 영화만 보더라도 흑인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보다는 독일'나치'를 다룬 영화가 더 인기가 있다. 어쩌면 내가 해외를 다니면서 '원숭이'놀림을 받게 되더라도, 기분은 정말 나쁘겠지만, 그 순간 참고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이유도 아마 공감력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배경에 큰 공감이 없어도,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에 큰 몰입이 된다. 

도덕적이지 않고, 도덕적이려 하지 않으며, 도덕적인 결론을 맺지 않는 이 흑인 아이의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인해 푹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어느덧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거침이 없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억울하게 소년원으로 가게 된 주인공. 바르고 건강했던 그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그 현실, 그 현실을 나 같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단 한 번도 원하지 않았던, 아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삶.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한 흑인 아이가 겪는 불운한 삶과 그 안에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상황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지도 모를 거라는 내 감정이입을 부끄럽게 만들어버린 책.

오랜만에 좋은 책 한 권으로, 또 하나의 느낌표 하나 얻어간다.


독서 내공이 아직 미천하여 잘은 모르겠지만,

미국 소설과 비교를 해볼 만큼 많은 한국소설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몰랐던 플롯의 위력(?)을 이 책을 통해 아주 조금, 진짜 쬐~끔 알 것도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설. 민. 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