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05 (스무 번째 서평)
오쿠다 히데오를 알게 된 건 와이프의 서재에 꽂혀있던 '무코다 이발소'를 읽게 되면서였다.
기억하는 일본 작가라고 해봐야 하루키나 히가시노 정도였던 무지깽이 남편에게 또 한 명의 좋은 작가를 만나게 해 주었으니, 매일같이 산처럼 쌓이는 집안일과 두 개(?)아들들을 케어해야 하는 바쁜 와중에도, 이렇듯 남편을 계몽시키는 일까지 해야 하니, 우리 와이프는 정말 바쁜 여자다.
'우리 집 비밀'은 출판된 지 이제 갓 한 달이 넘은 아주 따끈따끈한 책이다. '우리 집 문제', '오 해피데이'에 이은 가족 소설 시리즈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책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에 빠져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가진 어떠한 경험도 한 번쯤은 나올 것 같은 상상을 들게 한다. 책을 써본 적도 없고,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지만, 어떠한 신비적인 에너지로 인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이 하늘에서 떨어진 돌멩이를 맞아 쓰러진 뒤에 글을 써보기로 본격적으로 마음먹는 날이 온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배꼽 쥐어 잡고, 옆사람 때려가며 큰 웃음 빅재미 빵빵 터뜨리는 유머는 아니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가에 잔잔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기운을 주고, 글이 가진 유쾌한 힘에 이끌려 책을 놓고 싶지 않게 해주는 그런 글을.
책은 내 이야기다. 그리고 내 가족의 이야기며, 나아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를 통해 공감의 에너지를 받으며, 화자와 같이 느끼고, 화자와 같이 침울하며, 화자와 같이 울고 웃는다. 특히,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에는 깊지 않은 침묵과 얕지 않은 웃음코드가 있는데, 이 매력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이 늘 좋은 기분으로 책을 덮으리라 생각한다.
회사에서 동기에게 밀려 승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이직해야 하는 마사오의 쓰린 가슴은, 가끔 힘든 날에 찾게 되는 순댓국집에서 먹게 되는 소주 한잔의 그 쓰린 맛이다.
만 16세가 되어 알게 된 친아빠의 존재. 그리고 찾게 된 유명인 아빠.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그 깨달음은, 막연한 기대로 잠시 달콤함을 맛본 상상 뒤에 찾아오는 냉정한 현실에서 헛웃음만 나오게 되는 그 '현타'의 허무함이다.
그리고, '우리 집 문제'와 '오 해피데이'에서와 같이 마지막 챕터에서 보여주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와 같은 작가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는, 다른 소재로 항상 접하게 되는 우리 집의 에피소드다.
삶의 가장 가까운 곳들에서 끄집어낸 소재들.
그 소재들로 간결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하는 작가.
그리고, 어느덧 책 속으로 이입되는 독자들.
은유의 깊이와 묘사의 길이가 마치 '잘 쓴 글'로 느껴지고 비치는 듯한 어려운 문학 소설을 읽다가,
잠시 지친 두뇌에 이렇게 시원한 바람 한번 쐬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