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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비 Dec 19. 2023

두 얼굴을 사랑한다

에곤 쉴레_이중자화상

에곤 쉴레 <이중자화상> 


지난 주, 독감 바이러스에 당첨. 숙주로 살았다. 지독했다. 울렁거림으로 먹지 못해 더 죽을 맛이었다. 하, 독감이 이리도 지독했던가, 새삼 바이러스 위력에 온 몸이 떨렸다.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이제 이틀, 아직도 독감 후유증 그늘에 있다. 작은 아이를 시작으로 한 독감 릴레이, 그 아이는 아직도 학교를 못 가고 있다. "엄마, 무기력하고 힘이 없어, "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쌩쌩하게 이겨냈던 아이인데, 이번 독감 앞에서는 영 기운을 못 차리는 중이다. 독감 후유증의 위력 앞에 마음이 세 계단 쯤 낮아졌다. 


독감을 통과하며 내 속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또 다른 나와 만났다. 으슥한 골목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린 그는 나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한없이 꺼져들어가 좌절하고 우울해하는 회의주의자의 얼굴을 보았다. 열이 오르고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몸살로 욱신거렸던 시간, 울렁거려서 먹을 수 없었던 힘겨운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감각된 신체정보는 곧바로 좌절과 우울이라는 감정으로 해석되어 감정신호로 올라왔다. 내가 되게 한심해보이고 싫었다. 그런 나를 만날 때면 나도 휘청거린다. 안 그래도 힘들어죽겠는데, 감정까지도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치다니! 자기조절 실패 끝판왕을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몸이 힘들었구나 싶다. 그 와중에 추리소설과 평소에 못 읽었던 책 몇 권을 읽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아마 나의 중심을 지키려 몹시 애쓴 몸부림이 아니었을런지. 


에곤 쉴레의 그림, <이중자화상>을 들여다보니 독감 숙주로 지내며 조우한 두 얼굴이 보인다. 샴 쌍둥이처럼 착 붙어 있는 두 얼굴을 내 안에서 봤다. 건강해서 제법 조절이 잘 될 때는 우울한 회의주의자가 투명인간처럼 숨어 있다. 그러다 정신줄 놓을 정도로 아플 때면 잔뜩 째려보는 눈빛으로 투명망토를 걷어내고 등장한다. 속지 마시길. 당신은 얼굴이 하나가 아니잖아. 투명망토 속 그이기도 하다. 사실 여러 얼굴은 아주 밀착되어 있고 친하다. 전혀 다른 표정이라며 슬쩍 속이고도 싶겠지. 하지만 너무 닮았다. 눈, 코, 입만 닮은 게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도가 달라보이는 눈빛도 닮아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삐죽거리는 얼굴을 사랑한다. 온갖 염세는 다 끌어안고 찌질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얼굴에게 또다른 얼굴이 친근하게 만나 감싼다. 독감 숙주 노릇하느라 고생 많았어. 투명 망토 같은 거 이젠 두르지 마. 너의 찌질함이 꽤 맘에 든단다. 쏘아보는 그 눈빛도 봐줄만해. 절벽으로 혼자 내려갔니? 이젠 올라와. 독감 숙주 생활 청산했으니, 다시 툭 털고 가보자. 너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또 내딛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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