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비 Nov 05. 2024

고통으로 길을 만든다

마크 로스코_무제

마크 로스코_Untitied 1970



언제였던가,

가물거리는 기억을 소환하지 못해

검색창을 열고 찾아본다.


찾았다.

2015년이었군.

마크 로스코의 작품

이 그림을 만났던 때였다.


같이 사는 사람

전시회 가자는 말에

흔쾌히 그러지뭐, 였다


당시 경기북부에 살았던 나의 가족은

지하철을 길게 타고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작가도 몰랐고,

그냥 그런가보다, 였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었다.

그저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그림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림 앞에서 우는 경험,

난생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또 어렴풋이 알았다.

그림을 만나고

나를 만난 것 같아.


전시회를 나와

내가 한 말!

이 사람 그림,

집에 걸고 싶어!

생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바램이 훅 하고 올라왔다.


그림은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모니터로 보는 이 그림은 

직접 보는 그림의 감흥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특히 이 그림은 더욱더 그러하다.


나중에 알았다.

이 그림이 

그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 

마지막 그림이었다는 것을.


2015년,

그의 그림과 조우하면서

그가 경험했을,

그가 느꼈을,

그가 겪었을,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던 듯하다.


언어 너머

느낄 수 있었던 

어떤 고통이었다.


강렬하게 내 가슴으로 

쿵 하고 들어와

내 온몸을 흔들어놓았다.


9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나의 언어로 

9년 전 내 안에 있던 것들을  

언어화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 속에서 소화시키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달팽이 속도로 

느릿느릿 

소화시킨다.


내 것으로 

소화가 되어야

그제야 

표현할 수 있다.


어떤 

바깥 자극이

들어온다.


마음, 

생각, 

실존(존재)이 

어느 정도

싱크가 맞아야

그제야 

꾸물꾸물

꼬물꼬물

몸으로 

말로

글로

출력한다.


그 속도가 

너무너무너무너무

느려서

9년이 걸리기도 하고,

20년이 걸리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1년이 걸리기도 하고,


익숙한 것들은

3개월, 1주일,

하루 이틀,

심지어 후다닥 1초 만에 

번개 속도로 출력되기도 한다.


속도 차가 있지만

대개는 느리다.


오랫동안 

이 느림이 싫었다.


남들과 달라 보이는 

이 느림이 지독하게 싫어서

아닌 척하고 살아보기도 했다.


아닌 척이 잘 안되는 사람,

아닌 척하면서

시름시름 

많이 아팠다.


이제는 

그런 나의 느림과

일치(진정성)를 사랑한다.

느려도 

나답게 

나의 속도로 살아가는

나를 사랑스럽게 보기 시작했다.




올 초 1월부터 시작한

전문 코치 자격증 취득 여정.

그 여정 속에서

느린 자로서 

몹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음,

소화하지 못함,

그런 상태에서

팔 다리를 휘둘러야 하는,

코칭의 기술을 써야 하는

인지부조화.


그 

불일치에

고통스러운 

몇 개월을 보냈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배운 것이 이해되거나

소화되지 않아도 

행동으로 먼저 해보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게 안 된다.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소화하고

내 것으로 충분히 소화할 시간이 

늘 필요하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 것으로 소화되어야 

몸으로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수련 시간 동안,

그런 느릿한 일치를 

이해 못하고

기다려주지 못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나는 내 속에서 분열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가늠하지 못한 채

불일치 속에서

수련을 받았다.


방황했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나를 잃어갔다.


한 코치님과 대화하면서

나의 이런 여정을 

깊이 만났다.


비슷한 결,

비슷한 삶의 철학을 가진 

코치님이어서

더 깊이 이해받고 공감받고

수용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분을 만나

상호 연결되어

서로의 고유함을 확인하고

인정할 수 있다니!


운이 좋았다.


대화하면서

온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나다움이

어떤 존재의 너다움과 만나

연결되어

서로 빛나는 경험,

언제나 가슴이 뛴다.


만남이 끝나고

문득

마크 로스코 

마지막 그림이 떠올랐다.


고통은 값지다.


고통은 아프다.


고통은 나다움을 드러낸다.


고통은 너다움을 알려준다.


그리고 알았다.


고통은 나다운 길을 만들어 가도록 추동하는 숨은 동력이었구나.


그동안 고통을 통해 나의 길을 만들어왔구나.


고통은 나의 숨은 자원이었구나.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는 나를 믿고 왔구나.


끝까지 믿어준 내가

계속 그 자리에서

가만가만 나를 지켜주었구나.




마크 로스코 

마지막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

일본 어느 미술관에 걸려 있단다.

2024년 오늘을 기억하며

그의 그림을 다시 보러 갈 날이 있겠지.

10월의 마지막 날 

선물같이 찾아온 

나다움,

두근두근 심장에 

가만히 

저장한다.



*한 점 그림으로 글을 씁니다. 그림으로 나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삶을 만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밤이 주는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