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어린아이를 길러낼 만큼은 큰 산줄기 두어 개가 감싸는 곳이며, 자동차로 10분이면 마을 외곽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곳이기도 하다. 나의 역사는 동네 골목의 역사와 함께여서, 골목을 걷자면 어떤 가게가 사라지고 생겨났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0년 간 살아온 산골 바다 마을은 휴일을 보내는 방법도 이제는 빤한데, 근교의 영화관으로 영화를 보거나 요 앞에 바다를 보러 가거나 단골 짜장면집을 가거나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가족과 함께하는 평화롭고 다정한 휴식 같은 일상이며, 내가 원한다면 오래 계속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몇 년 간 이 일상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만이 재생된다는 상상을 하면 마음에는 불안과 권태의 씨앗이 싹트곤 한다. 부모님은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라고 말하지만,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계속 파도치게 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이라지만, 그 '한 번'에 담긴 이야기는 하나가 아닐 텐데, 여러 개의 이야기를 담으려면 여러 가지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서울에서, 나는 종종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감정에 빠진다.
별다른 계획이 없는 주말 낮에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워있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십상인데, 그럴 때면 아, 이렇게 한 주가 가고 한 달이 가고 나는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올해치 나이를 먹어온 시간을 돌아보면 별 일을 하지 않은 듯한데.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될만한 경험들을 크게 모으지 않은 듯한데. 스쳐온 생각들에 마음 한구석을 까맣게 태우기도 한다. 계속 서울에 있는다면 미래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가정을 해봐도 다 한 자리대 퍼센트 같다. 말하자면, 서울에서 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느낀다.
한때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느끼면 불안하고 두근거렸다. "눈을 감아봐. 그게 네 미래야."라는 말장난에 해맑게 웃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웃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는다.
검은색의 미래는 희망 한 조각 없는 암흑이 아니라, 수많은 경우의 수가 담긴 그림들이 겹쳐진 검은색 도화지같다는 생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는, '나'라는 씨앗이 움터가는 요람이 될 흙 속 풍경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씨앗은 알아주는 이 없이 흙속에서 고군분투하다가 고개를 내미니까.
그렇게 '검은 미래'가 싫지 않아 졌다.
정해진 미래를 알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재미없을지 생각해보자. 내가 29살에 칼국수를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35살에 좋지 않은 사건이 벌어져 직업을 바꾸고, 42살에는 역시 고향이 좋다며 이사를 간다는 둥. 예정된 미래라니, 인기 영화의 스포일러와 비교할 수 없이 허망하다. 미래는 본체 알 수 없는 것이 맞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름자처럼 '아직 오지 않은 것'이기에 조금씩 가까워지면 형체가 뚜렷해지려나.
서울의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수많은 변수들의 존재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여 집적 활동을 하며 여러 사건이 벌어진다. 우연히 접한 전시회가 마음에 긴 울림을 주기도 하고, 문득 새로 생긴 식당에서 처음 맛보는 음식을 먹어보며 정을 붙이기도 한다. 따끈하고 신선한 독립출판물을 만나볼 수 있고, 국제적인 행사들이 열려 그 기운을 함께하기도 한다. 간혹 서울이라는 공간이 주는 불확실성에 의존하는 것 같아 수동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인간이란 장(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걸. 아직 나는 해보지 않은 경험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기 때문에, 별이 총총한 우주 같은 이곳에서 많은 변수에 이리저리 부딪혀 보고 싶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 때문에 마음이 힘들곤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충분히' 최선을 다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