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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an 08. 2024

긴 연애, 결혼을 해야한다는 강박

친구 H를 따돌리고 별을 보러 가는 길, 길으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고백했다.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귀자.”


쿵쾅!


가슴은 사정없이 요동치며 설레지만 마음과 다르게 나는 싫다고 거절했다. 


'지금은 좋다고 하지만 나중에 싫어졌다고, 그만 만나자고 하면 어쩌지?', '어차피 헤어질 거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어디 이 뿐인가! 나는 앞선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당장 결혼하자는 것도 아닌데, '장남인데 괜찮을까?',  '시누이가 넷인데?', '시어머니, 시아버지 될 분들이 연세도 많으신데?', '집이 잘사는 것 같지 않은데?' 등등.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바삐 움직였다.


결혼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십 대 초반에도 알고 있었다. 장남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기에 나는 두려웠다. 우리 아빠가 장남이다. 그로 인해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무거운지 보고 있었기에, 나는 그 불구덩이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단지,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귀자.' 그 한마디가 이런 생각까지 할 것이냐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대학 졸업하기 전에 남자 친구 한 번 만나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 나는 그 당시 한 번도 남자 친구를 만나보지 못했던, 모태 솔로였다.) 그래, 뭐 사귄다고 다 결혼해. 왜 조건을 따져 따지긴... 앞서나가긴... 거기다가 나 좋다는데, 나도 싫은 거 아니잖아. 그래, 그럼 만나보자!’ .


결국 나는 싫어 싫어하다가 기리의 설득에 은글 슬쩍 못 이기는 척 넘어갔다. 


가볍게 시작한 만남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볍기 이전에 무거움을 먼저 생각했던 만남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만나는 동안 툭하면 헤어지자는 통보했다.


불안도가 높은 나는 기리가 조금만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면 바로 “우리 그만 헤어져.”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다. 무엇이 불편한지, 무엇이 불안한지에 대해서 말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 문을 닫고, 무조건 "헤어져." 였다.


회피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내가 내 마음이 무엇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하지 잘 몰랐기에 표현 또한 하지 못했다. 어쩜 그래서 더 회피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기리는 끊임없이 나를 붙잡았고, 나는 또 처음처럼 못 이기는 척 만남을 이어갔다. 그렇게 우린 만나고 헤어지고를 6년 동안 반복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헤어지자고 말해놓고 이틀 이상 헤어진 적이 없다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데 그때는 나름 진진했다. 

 

우린 만나면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을 마셨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많이 다녔다. 나름  연애편지도 주고받고, 서로 교환 일기를 썼다. 유치 뽕짝인 교환 일기를 볼 때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만난 지 100째 되는 날에는 기리가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의림지에서 나름 화려하게 폭죽도 터트려 주었다. 그렇게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 졸업 시즌이 왔고, 졸업 직전에 나는 취업을 해서 서울에 올라왔다. 그리고 곧, 기리도 따라 서울에 취업해서 올라왔다.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나. 외로움에 매일 같이 울던 나를 달래주러 기리가 빨리 온 것 같아 고마웠지만, 그때가 제일 많이 기리를 밀어냈던 시절이었다. 기리가 바로 취업해서 옆으로 온 게 달갑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었다. 외로움이 커서 매일 울기도 했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도 싶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에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리는 나의 그 어떤 행동에도 흔들림 없이 곁에서 든든히 버팀목이 되어 있어 주었다.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결혼을 하고 싶다가 아닌, 결혼해야한다는 강박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싫은 사람과 결혼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좋아했고, 의지했고, 세상에 이보다 나에게 다정한 사람은 없으니깐. 엄마보다 그 어떤 가족보다도 의지가 되고 믿는 사람이 되어버렸의깐. 그러나 결혼은 여전히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지속적해서 만나는 게 나는 더 두렵게 느껴졌다. 만남을 지속할수록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진짜 헤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이 들 때쯤, 눈이 엄청 많이 내린 27살의 겨울날, 대관령 눈밭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리고 우린  1년 뒤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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