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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an 15. 2024

노력하기 전에 노력 안에 들어 있는 관념을 살피자

<스토너, 존 윌리엄스>를 읽고 필사하며...

p.76 그녀는 자신이 남편과 가족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그 의무를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녀는 지극히 형식에 집착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p.77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하루도 혼자 힘으로 자기 몸을 돌본 적이 없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또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나지막한 진동처럼 전혀 변화가 없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p.79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일단 아버지, 어머니와 의논을 해봐야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스토너, 존 윌리엄스>
p.87 "당신의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윌리엄." 그녀가 말했다. "노력할 거예요."
<스토너, 존 윌리엄스>

결혼을 앞둔 이디스와 스토너.

이디스 결혼을 앞두고 스토너에게 사랑을 표현하기보다 좋은 아내가 되겠다고 말한다. '노력할게요.' 이 말이 섞연치 않다. 서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이전에 역할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부분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어릴 적 살았던 환경으로 인해 쌓인 관념. 그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꽉 막혀있는 이디스. 화가 나고, 짜증이 솟구친다. 못마땅하다. 이디스도, 그런 환경도. 이디스에게서 예전의 내 모습, 그리고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나의 옛 관념들이 보여서인 것 같다.


결혼 이후, 나는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강박이었었다. 살림과 육아는 여자인 내 몫이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남녀 차별은 말도 안되고,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하면서도 남편에게는 가장의 역할을 강요하고, 나에게는 아내와 며느리의 역할을 강요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시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안부 전화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의무로 여기며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안부 전화를 했다. 시댁과 친정이 같은 동네에 있었는데 시골에 가면 항상 시댁부터 들렸고, 혹여나 친정에 먼저 들렀다가 시댁에 가면 큰 잘못을 한 거처럼 눈치가 보이곤 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돌쟁이 아이를 돌보고, 뱃속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어 체력적으로 힘들어 전전긍긍하면서도 남편에게 아이 어린이집 픽업 한 번, 설거지 한 번을 제대로 부탁 못 하는 바보였다. 아니 했을 것이다.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남편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책임감에 짓눌려 꾹꾹 눌러 담아 참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기억이 사실 잘 나지 않는다. 단지 힘들었다는 거, 설거지하다 말고 쪼그려 앉아 많이 울었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


사랑니에 염증에 생겨 얼굴이 퉁퉁 부어도, 열이 나도, 허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되어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은 허다했다. 그 잠깐을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때 그렇게 옆에 사람이 없었을까? 아닌 것 같다. 단지, 내가 나에 대해 미루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이니깐, 나는 아이들 곁에서 떠나면 안 되니깐 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쉬이 누구에게 나 좀 도와주라고 말을 안 하고 꾹꾹 삼켰던 것 같다. 그래 놓고 그때, 나는 원망이라는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었다. 바보같이.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내부의 잘못된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그로 인해 집안 살림과 육아, 시댁 관련 일을 모두 아내의 몫, 엄마의 몫, 며느리의 몫으로 돌려 '나'를 버리고 역할로 살았다. 어려서 내가 보고 자라온 환경이 내가 판단하기도 전에 내 몸으로 흘러들어와 깊숙이 자리 잡혔던 것이다.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시어머니에게 안부전화는 정말 진심으로 어머니가 걱정되고 궁금할 때 전화한다. 그럴수록 시어머니와 관계가 더 좋아지고 있다. 집안 살림도 분담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남편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넘기기도 했다. 병원 갈 일 있으면 참지 않고 가고, 혼자 외출도 종종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가능해지고, 해결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책임을 내 몫이라 여기지 않는다. 가정은 같이 해나가는 것, 같이 꾸려나가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내가 다 책임지고 살아가는 건 오만한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은 원망을 낳았고, 원망은 나를, 너를, 우리를 힘들게 했다.


말하지 않고, 참고, 역할로 상대를 바라보고 짐 지우기보단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애틋이 사랑하며 배려하고 살아가고 싶다. 나도 모르게 나에게 들어오고 있는 관념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조금씩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다시 자리 잡아가 보자.


스토너와 이디스의 결혼 생활은 어떻게 이어질까. 이디스 안에 깊숙이 박혀있는 관념들은 결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디스가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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