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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an 19. 2024

내 공간이 나를 만들어 간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를 필사하며

이렇게 꾸민 끝에 서재가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낡은 회색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면서 나무 본래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니, 마침내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 스토너, 존 윌리엄스 <p.140~141>- 

<작문 연습 & 에세이 쓰기>

베란다가 서서히 서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홍은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수줍은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꽁꽁 숨겨 놓았던 꿈 하나가 묻혀있었음을 알아챘다. 겉으로는 혼자만의 공간, 아이들과 분리된 공간이었지만 사실은 그곳은 자기의 꿈의 씨앗이었다. 따라서 홍은 자기만의 방을 꾸며서 자신의 꿈을 향해 해나가야 할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셈이었다. 홍은 책꽂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꽂고, 여러 종류의 노트와 펜을 사서 연필꽂이에 꽂아 두었다. 회색빛으로 황량했던 베란다는 노란빛이 맴도는 따뜻한 공간으로 변해갔다. 보일러가 안 들어와 차가운 바닥엔 전기장판을 깔고, 책상 옆에는 난로를 놓고, 난로 위에는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보글보글 끓였다. 점차 온기로 가득했다. 온기가 찰수록 가슴 속도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홍이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으로 하나둘  방을 채우면서 서서히 온화한 바람이 홍이의 마음에 불어왔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얼어 붙어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홍이는 책상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홍이는 자신을 만나기 시작했다.


2020년 베란다에 내 방을 만들었다. 그전에는 식탁 한 귀퉁이에 내 자리를 마련해 놓고 쓰던 중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앉아서 공부를 하기도하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가만히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지속될수록 나는 지쳐만 갔다. 그때 당시 오소희 작가의 [엄마의 20년]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눈썹을 그리고 나가라'라는 소제목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둘째는 갓 초등학교 입학한 여덟 살이었다. 아이들만 두고 나가기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분리된 공간을 원했다. 넓은 베란다의 장점을 살려 그곳에 내 방을 만들었다. 책상을 주문하는 것부터 설레는 일이었다. 책상을 주문하고, 의자를 주문하고, 그 안에 꽂을 책들을 모았다. 그렇게 내 공간이 생기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둘째 아이 출산하기 전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할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나는 사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사고, 참여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돈 벌어서 좋아하는 일, 내가 꿈꾸는 일에 가까워지는 일을 하나씩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재의 모습도 점차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만 보고 글만 쓰던 책상이었는데, 곧 컴퓨터가 들어왔고, 줌 모임을 하는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장비들이 하나둘씩 갖춰지기 시작했다. 한겨울에도 입김이 나는 그 추운 곳에 앉아 손을 호호 불며 책을 읽었다. 몸은 춥지만, 마음은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곳을 떠나 이사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사하는 집은 베란다가 없었고, 방도 내가 방 하나 차지하긴 부족했다. 아이 둘 방을 각각 하나씩 주고 나면 방이 하나 남는다. 그 방은 우리 부부 공동의 방. 남편의 배려로 공동의 공간에 내 자리를 마련해 두긴 했다. 그러나 처음에 샀던 그 책상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베란다 서재에 있던 물건들을 대폭 줄이고 안방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책상을 수납이 더 잘되는 책상으로 바꿨다. 원래 있던 책상을 중고로 팔면서 얼마나 아쉬웠던지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내 공간이 집 한편에 있다는 자체로 감사하다. 


내 공간이 확보되면서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늘었고, 혼자 오롯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러면서 일도 생겼고, 꿈도 키워나가고 있다. 아직 집에 자신의 공간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 권하고 싶다. 작게라도 나만의 공간을 꼭 만들어 놓으라고 말이다. 그 공간이 나의 꿈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줄 것이다.


<2020년, 처음만든 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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