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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an 26. 2024

너와 나의 시간

<스토너, 존 윌리엄스>를 필사하며

하지만 그녀가 조금 필사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그녀가 그렇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된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 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지 못했으니까. 따라서 그녀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그가 따라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p.165

<작문연습>

하지만 그녀는 조금 필사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그녀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받치게 된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 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결혼생활의 무게를 덜어주지 못했을까. 따라서 그녀가 그와 아무런 상의 없이 아이들의 교구를 사고, 책을 하고 놀잇감을 사들이는 것에 대해 그는 모른척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결혼생활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누구 한 사람의 몫일까.

함께 찾아가는 길 안에 시행착오가 있는 것뿐.


나도 나 혼자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던 때가 있다. 그때 그 시절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을 원망하는 나를 원망했다. 결국 남에게 돌린 화살은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28살, 빠르다면 조금 빠른 결혼을 하고, 30살에 첫 아이를 낳고, 곧이어 32살에 둘째를 낳았다. 2년 터울이지만 개월 수는 20개월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었다. 늘 바쁜 남편이었다. 당연히 육아와 살림은 모두 나의 몫이었고, 나는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 수중에 내가 내 손으로 돈이 꼭 필요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안심되었다. 그래서 독박 육아 속에서도 항상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바쁜 나날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아등바등 되었을까.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었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힘을 얻는 나날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내 힘의 원천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매일 같이 촉감 놀이를 하고,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 보냈다. 아이들과 놀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내가 더 신나 놀았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힘듦이 폭풍처럼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과의 놀이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당시 내가 살아있는 느낌을 거기서 받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며 내가 무용한 양, 나는 기를 쓰고 아이들 놀이에 박차를 가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내 카카오 스토리 사진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남편 인스타에 들어가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2016년 전후였던 것 같다. 남편이 인스타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들어가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자꾸 지인이 들어가 보라고 나를 부추겼고, 남편 출장 많이 다니냐며 물었다. 완전 솔로 느낌이라나 뭐라나... 암튼 그 말을 듣고 어느 날 밤, 나는 남편의 인스타에 들어갔다. 지인의 말을 듣고 봐서일까. 남편의 인스타에 들어간 순간 너무나 남편은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지인의 말대로 남편은 그냥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분노했다. 나는 엄마의 자리를 지키고, 아내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고 있는데, 혼자 오롯이 존재하고 있은 그에게 화가 났다. 나는 나를 이렇게 버려두고 사는데, 너는 어쩜 그렇게 너를 지키며 살고 있냐고. 너는 너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매도해 버렸다. 그건 그냥 사진일 뿐이라는 생각이 전혀 못 했다. 그만큼 나는 힘겨웠는지 모른다. 힘겨웠기에 상대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에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그 사진을 보고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나는 내 삶에 억울함을 느꼈던 것 같고, 내가 살기 힘든 것이 남편 탓인 것 같았다. 내가 저 사람을 만나 이렇게 인생이 망가졌다는 감정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당시 남편의 인스타 사진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의 화를 알아차리고 이 화를 잘 다스리기 위해 읽고 쓰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남편이 보였고, 그의 마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지금은 스스로를 잘 지켜나가는 남편에게 고맙고, 그 어떤 순간에도 단 한 번도 나를 배려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은 지금은 더없이 그를 사랑한다. 이런 사람을 어찌 내가 만났을까. 인생 최대의 행운이고 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남편의 시간을 존중하고, 내 시간을 존중한다. 서로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함께할 때 충분히 함께 행복하게 시간을 보낸다.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투닥거리는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시간은 나를, 우리를 단단하게 하기 위한, 서로를 알기 위한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에서 비롯되었기에 애정이 먼저라는 것을. 그러니 싸움 전에 상대가 나의 무엇을 배려하려고 했는지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신혼 초부터 시작된 불화가 십 년 넘도록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잘 이겨내고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역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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