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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un 05. 2024

하고 싶은 것을 모를 땐 하기 싫은 걸 적어보자

이기주 산문집 보편의 단어를 읽으며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앞으로 뭘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면, 나는 이면지를 꺼내 '하고 싶은 것'의 목록을 적는다.
이때 하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으면, 일단 하기 싫은 것을 먼저 떠올려본다.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는 있어도 하기 싫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기 싫은 것의 목록을 써 내려간 다음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하고 싶은 것을 다시 또박또박 적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아니 어쩌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 테지만 말이다.

-보편의 단어, 이기주 산문집-
다르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잠에서 덜 깬 것 같은 흐리멍덩한 생각을 또렷하게 가다듬거나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편의 단어, 이기주 산문집-

<단상>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았다. 하기 싫다고 적은 거지만 그다지 아주 하기 싫지는 않은 것이다. 못 견딜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는 자세랄까. '사는 데, 이 정도는 필요하잖아.', '이것도 안하면 어떻게?'라는. 나는 그렇다는 거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근무시간이지만 오늘처럼 일 없는 날은 이렇게 읽고 쓸 수 있으니 꽤 괜찮고. 밥과 청소 등 집안 살림은 싫지만, 나의 움직임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기쁨으로 다가간다면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걸 당연히 여길 때, 가끔은 멘탈이 나가지만 말이다.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기꺼이 내가 내 시간을 써가며 하는 일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바란다. 조심해야지 하면서 내가 기꺼울 만큼만 해야지 하면서 늘 그 선을 넘어간다. 그래서 요즘 간혹 엄마가 했던 '살아온 게 억울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희생을 많이 한 만큼 삶이 억울하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 나는 희생이 아니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자꾸 희생이 가깝게 심파로 가는 경우를 목격한다. 조심해야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내 마음이 괜찮을 만큼만. 또 이렇게 내가 나에게 당부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써보니 24시간의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구가 발견되었다. 혼자 있지만 같이 있는 기분이랄까. 혼자 있지만 아이들과 남편이 돌아왔을 때 깨끗한 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왕이면 맛있고 건강한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종종걸음을 한다. 혼자 있지만 나를 위한 시간보다는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업무 보는 데 시간을 쓰던가. 

여기서 내가 말하는 24시간이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말한다. 남이 깨끗할 것을 위함이 아니라 내가 깨끗함을 원할 때, 남이 맛있는 음식을 원할 때가 아닌 내가 맛있는 음식을 원할 때 하고 싶다는 거다. 남을 챙기려고 종종거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편하게 쉴 시간이 필요하다.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던, 산책을 하던 훌쩍 여행을 가 건, 잠시 가족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좋아하기에 사랑하기에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지만 가끔은 나도 진정한 나 홀로가 필요하다.

요즘 부쩍 진정한 독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 자립과 운전을 해서 기동성을 갖추고 싶은 마음. 하나씩 해 나가면 될 일이지. 나를 위해서 꼭 이루어 내고 싶다. 이 책 문장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채 이뤄지지 않은 것이 '기억의 뼈대'(p.82)'라는 문장이 나온다. 나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기억의 뼈대'가 되겠지. 그리고 이런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해 줄 거라 믿는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 투여! 그럼 일해야지. 나는 이런 생활이 싫지만 좋다. 마냥 다 싫은 건 아니니 다행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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