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이렇게 애교가 없니?
글로쓰다2기 day8
"너는 왜 이렇게 애교가 없니?"
직장 상사의 말에 그녀는 순간 숨이 멈춰졌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몰라 당황했다. 분명 찬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거 같은데, 그 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술자리 분위기는 계속 무르익어갔다.
그녀가 처음 G회사에 입사했을 때, 전 회사와 달리 G회사사람들이 친절했다. 전 회사 상사는 보고서를 쓰는 양식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보고서를 써 가면 빨간펜으로 난도질하고, 큰 소리로 윽박지르며 화를 냈었다. "대학 나와서 이거밖에 못 해?"라는 식의 막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 됐다. 매일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일하면 수습 기간이라는 이유로 월급 80만 원 쥐여주었다. 거기다 수습이 끝날 때쯤 연봉협상에서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월급을 작게 받는 사실을 알았다. 더 이상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없어 그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6개월 뒤에 선배의 소개로 겨우 G회사에 입사했다. G회사는 전 회사와 달리 업무를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전 회사에 비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준다는 게 맞을 정도였다. 신입이었던 그녀는 열심히 배우려 노력했다. G회사의 업무는 주로 턴키 업무를 했다. 프로젝트가 나오면 팀을 꾸려 합동사무실에 들어갔다. 그 사무실에는 시공사를 필두로 여러 업체가 분야별로 상주하여 서로 협업해서 일을 했다. 시공사가 갑의 위치에 있고 나머지 업체는 을, 병, 정의 하청 업체인 것이다. 그녀의 회사는 제일 아래 단에 속하는 지반조사 분야였다. 토목 분야다 보니 합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였고 그중 10분에 1만이 여자였다. 그녀가 처음 합사에 들어갔을 때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합사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그녀는 "네", "아니오"만 하는 단답형으로 되어갔다. 키가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했던 그녀는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다. 사회 초년생에다가 어려 보이기는 여자가 앉아 있으니 지나가는 업체 남자 직원들은 쉬이 반말을 했고, 어쭙잖은 농담들과 말도 안 되는 추파를 던졌다. 어리숙한 그녀가 선택한 방어 방법은 웃음기를 없애고 딱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경력이 쌓일수록 사무적인 태도가 더 굳어져 갔다.
프로젝트가 끝나 합사에서 철수했을 때, 선배는 그녀가 외주 업체랑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곤 "어떻게 그렇게 사무적으로만 말해? 날씨 이야기도 좀 하고, 근황 이야기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 네."라고 하며 수긍하는 척만 하고, 그 이후로도 쭉 업무 이야기만 했다. 그녀는 상대가 혹시라도 무례하게 나올지 몰라 지레 겁을 먹고 일관적으로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녀가 결혼을 앞두고 자주 같이 나가던, 첫 합사에 같이 나갔던 상사와 일을 했다. 그 상사는 직급은 이사였고, 그녀는 대리였다. 이사는 대리인 그녀에게 일을 주고, 부장과 과장에게 일을 지시하도록 했다. 그녀는 그게 어려웠다. 한낱 대리가 부장과 과장에게 일을 뿌리다니, 어불성설 아닌가. 그래도 그녀는 이사가 하라는 지시에 따랐고, 되도록 자신이 일을 많이 맡았다. 결혼 준비로 바빴던 그녀지만 일 처리하느라 결혼하는 달에도 15일 이상 야근을 했다. 결혼 후, 그 이사의 태도가 이상해졌다. 어떤 일이든 괜한 일로 짜증을 내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일을 급하게 처리해? 천천히 하라고? 제대로 한 거 맞아?"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그 전에 이사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이 잘 못했다고 여기고 죄송하다고 말하며 일을 시정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이사는 점점 그녀를 차갑게 대하고,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움을 받는 것 같았다. 그녀는 결국 그 미움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월급보다 더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임신하면서 더 이상 프로젝트에 참여하기가 힘들다고 선언했다. 밤낮없이 일하는 환경에서 아이를 지킬 수는 없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그녀의 방법이었다. 그 이후 예전에 같이 일했던 외주 업체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오후 6시 퇴근을 약속하고 출근하는 조건을 제안했다. 야근 없는 조건이라 그녀는 흔쾌히 그 회사에 들어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외주 업체 사장님에게 그녀를 이야기해 준 게 G회사 이사였다.
그녀는 G회사를 그만두고 나서고도 그 이사가 자기한테 왜 그랬을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정말 좋으신 분이었다. 그녀에게 처음 일을 차분하게 가르쳐주었고 평소에 칭찬도 많이 해주며 그녀를 아껴주셨던 분이었다. 단지, 그녀와 동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꽤 애교 있고, 싹싹한 아이였다. 그 친구는 일도 잘했다. 이사는 그녀와 그 친구를 종종 비교했다. 그녀는 눈치가 없었는지 이사의 말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회사에 다녔다. 그녀의 위에 바로 과장도 여자였는데, 그 과장 또한 일도 잘하고 꽤 싹싹한 편이었다. 그녀가 그만둘 때쯤 이사는 그 과장에게 주로 업무를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갈 길을 잃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그녀가 결혼에 들떠 일에 제대로 집중을 못 하고, 헐렁거렸을 수도 있다. 매번 그 자리인 그녀의 업무 실력도 보기 싫었을 수도 있고. 지나간 일인 것이다. 그래도 그 이사는 그녀가 결혼 후 살길을 마련해 준 큰 은인이 되어주었으니깐. 그녀의 기억속에 그 상사는 고맙고, 감사한 분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