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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Mar 09. 2023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걸작 모나리자의 모델은 -

   

제목이 재미있다.

하지만 제목만 봐서는 그 내용을 전혀 짐작

수가 없다.  15세기 밀라노의 거리. 열 살의 좀도둑 살라이는 레오나르도의 친구 지갑을 훔치려다  붙잡히고 레오나르도는 살라이의 익살스러운 말솜씨와 맹랑한 태도에 웃고야 만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하는 그를 꾸짖기보다는 오히려 엉성하기 그지없는 그를 제자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레로 나르도의 평생 동안 그의 곁에서 조수처럼, 혹은 제자로, 아니 그 이상으로 함께 했던 살라이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이 책은 시대적 실제 인물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걸작 모나리자가 탄생하기까지  레오나르도의 천재적 작품세계와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회화, 건축, 철학, 시, 작곡, 조각, 물리학, 수학,

해부학 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국의 작가 E.L. 코닉스 버그는 이 희대의 거장을 아주 편한 동네아저씨 소개하 듯 그녀 특유의 위트적 언어로 우리에게 안내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밀라노의 통치자였던 루도비코 공작에게 고용되어 그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을 진행했다. 레오나르도가 정말 이런 일까지 했었나? 하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점성술사들이 그러는데, 1월에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는군"


"축하드립니다. 공작님. 밀라노의

자랑이신 공작님께서 드디어 결혼을 하시다니,

온 밀라노 백성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루도비코공작은 결혼준비의 모든 감독을 레오나르도에게 맡기며 가장 눈부시고 화려한 결혼식 준비를 지시하는데 귀족 결혼식 기획부터 축제공연을 위한 준비까지 모든 분야에 막힘이 없다.         


레오나르도는 축제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말을 스케치하는 것도 그만두었고, 강과 산을   탐구하던 것도 그만두었으며, 수학과 해부학 연구도 제쳐 두었다. 축제 준비를 하는 동안 레   오나르 도는 마술사 노릇도 하고 살림꾼 노릇도 했다.-p32     

 

이 부분은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며 탁월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작가는 레오나르도가 스케치를 하며 강과 산을 탐구하고 농장 포도밭 개량과 토지 관개사업   

을 진행했던 일 등. 소설 속에서 다양한 그의

실제적 능력을 독자들로 알게 하고 있다.     


루도비코의 어린 신부로 등장하는 인물이 베아트리체다. 얼굴색은 가무잡잡하고 키가 작으며 결코 예쁘지 않은 베아트리체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듬뿍 지닌 여자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찬사를 받는다고 해서 외로움을 이길 수 있을까요? 내 가무잡잡하고 못생긴 거죽과 그 위에 붙은 '공작부인'이라는 칭호가 아닌 다른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어찌 외롭지 않겠어요?-p69.     


이렇게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못생긴

거죽을 이야기하며 베아트리체는 내면에 있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꺼내어 보인다.


자신은 무지개가 가진 모든 색깔의 색조 하나하나까지 볼 줄 아는 눈, 악기 류트의 음 하나하나를 들을 줄 아는 귀, 온갖 향기 감촉, 온갖 맛에 대해 흥분하는 피를 가졌다고 말이다.


베아트리체의 슬픔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못생긴 외모에 묻혀 있고 남편 루도비코공작은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밀라노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이 책이 특히 청소년들에게 많이 권해지고 읽히는 이유는 자신만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집중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베아트리체의 재능과  그녀만의 매력을 알아보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보게 하며 드러나도록 도와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레오나르도가 베아트리체를 찾아가자

곧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레오나르도를 보러 왔다가

공작부인한테 반해서 그곳에 머물렀다.


저녁이면 베아트리체의 방에서는

시가 낭송되고 노래가 불려지며 음악이

연주되었다.


살라이는 베아트리체가 마법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베아트리체가 끼어들면 즐거운

이야기꽃이 피기 때문이다. p75

 

루도비코 공작이 아내의 매력을 알게 되는

부분은 더욱 흥미롭다. 공학이나 전쟁무기,

성벽설계에 관해 의논하려고 레오나르도를 찾을 때마다 레오나르도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예술을

토론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레오나르도를 찾으러 아내의  거에 가면 그곳에는 즐겁고 재치 있는 대화와 웃음이 넘치는 것이다.     


'이 조그맣고 가무잡잡한 여자가 레오나르도

같은 위대한 지성의 관심을 끈다면...'


루도비코는 레오나르도의 눈을 통해 자신의

아내를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레오나르도와 살라이, 그리고 베아트리체.

세 사람이 끌어가는 이 책의 스토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레오나르도의 수 백 년 앞서는 두뇌의

명석함을 보게 한다.


머릿속에 우주의 원리를 모두 담고 있는 듯,

진지하고 자기 기준이 높은 레오나르도. 그의 옆에는 늘 거짓말쟁이에 좀도둑인  살라이가 있고 그들은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유명인사들과 저녁을 보내고 나면

살라이는 스승에게 다시 새 바람을 넣어주고, 재치 있게 거침없는 말을 해서 스승을 곧잘 웃겼다.


레오나르도를 유일하게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이 오만불손한 젊은이로 성장한 살라이였던 것이다.     


베아트리체가 세 번째 아이를 낳은 후 사망하면서 소설은 밀라노의 행운도 다 되었음을 예고한다.


프랑스군의 침공으로 루도비코공작은 자기의 도시와 자랑하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독일로 도망친다.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 레오나르도는

새로운 작품활동에 몰입하며 젊은 미켈란젤로와 견주는 상황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피렌체사람들은 새로운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어디든 갔고 어떤 불편도 감수했으며 문화에 열광했다.


레오나르도의 걸작들은 이러한 예술

사랑의 분위기로 탄생된 게 아닌가 싶다.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하늘이 내린 최고의 지성 레오나르도와의 만남이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는 대작들을 낳게 한 것이 아닐까.      


문득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어디에

집중하고 열광하는가 생각해 본다.

수 백 년이 지나도록 빛나며 남아 있을 이 시대의 걸작은 과연 무엇인지 시대를 채워가는

한 사람으로서 갑자기 골똘해진다.      


책장이 몇 장 남지 않은 부분에서 살라이는

한 사나이를 만난다.  금화가 담긴 지갑을 내밀며


 "이 돈으로, 아......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여인의 표정은 두 가지였다.

너무 친숙하기도 하고 전혀 낯설기 했다.

다음 순간 살라이는 깨달았다.


베아트리체가 살아 있다면 바로 이 여인과

같은 모습이리라는 것을...


이 여인은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이 여인은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깊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갖게 된 사람이었다.

머릿속의 잣대로, 오직 자신의 잣대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의 여인, 인내하는 법을 아는 여인, 무수한 겹으로 감싸는 여인.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살라이는 자기가 레오나르도에게 이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설득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여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을,

그것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레오 날도뿐이라는 것을.-p162.     


 책장이 거의 끝날 무렵, 왜 이 책의 제목이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인지 알게 된다.


'귀족들이 정한 대로 따를 필요도 없고, 거추장스럽고 화려한 장신구도 없이 레오나르도는

이 여인에게 머리를 풀게 하고, 수수한 옷을 입히고 소박한 자세를 취하게 하리라.'


레오나르도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그려 내리라고 살라이는 생각했다.     


책의 결말 즈음, 레오나르도는

많은 귀족들의 초상화는 마다하고 평범한

상인의 부인을 그렸을까에 대한 답이 나오는

것을 본다.

 

'그 이유는 살라이에게 있다.'

라는 이유도 말이다.


신비로운 걸작 <모나리자>를 미국의 작가 E.L. 코닉스 버그의 눈으로 다시 만나는 즐거움이 참 새롭다.


책을 덮으며 수 백 년 전,

밀라노의 거리가 친숙하게 느껴진다. 새로운 작품을 보기 위해선 어디든 갔고 어떤 어려움도 감수했다는 피렌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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