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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Jan 25. 2024

산다는 것

-홀로 서기-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올 때 누구나 그렇듯이 혼자였다. 

아니, 혼자라고 표현하면 안되는걸까 부모님이 계셨고 오빠들, 언니들도 있었기에 혼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 모두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혼자라고 할 수 있겠다.  각기 자기 삶의 과제가 다르기에.


더 큰 성장을 위해 고향과 부모님을

떠났을 때 내 곁에는 바로 위 언니가  늘 함께 있었다. 같이 공부하며 함께 책을 읽었고 음악도 함께 들었다. 

누가 끼어들 틈이 없을만큼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언니와 함께 했으므로 때로는 친구로, 또 고민 상담자로 늘 곁에 있었다. 그리 함께했던 언니의 결혼이 늦어지며 내가 먼저 결혼을 결정했을

때는 정말 마음힘들었다. 


언니와 한칸짜리 자취방에서 찌개 하나 끓여놓고

깔깔대며 맛있게  먹던 생활보다 결혼 후, 풍성한 식탁에 둘러 앉았지만 왠지 마음은 늘 허기가 졌던 시댁 살이였다.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당시 유행어처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시댁살이, 홀로 이방인이었던 나는 고독의 수렁에 깊게 빠져 들었다.

일년 반, 우리의 필요에 의해 지냈던 시댁살이 동안 나는 두 번의 자연 유산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갔다. 2주 이상 하루도 잠을 잘 수 없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 받아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 늦은시간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기에는  하루가  너무 길었고 긴 시간을 채우는 과정에 시어머니라는 폭탄을 안고 있는

불안이 제일 큰 문제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감정폭탄을 소유하신 분, 어머니의 슬리퍼 끄는 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예측이 안되는 상황에 극도의

불안이 몰려온다. 무슨일 때문에 야단을 치실까.  시어머니 심기에 따라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집안 분위기는 새댁인 나에게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의 이해하기 힘든 성격을 겪으며

나의 두꺼운 일기장은 시댁살이 결정의 한탄과

온갖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비난으로 채워져 갔다. 터질것 같은 감정의 돌파구로 일기 쓰기를

선택했는데 늘 궁금한게 많고 뒤지기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들킬까봐 꼭꼭 숨겨 두기까지 했다.


분가 후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살다보니 수십 년이 훌쩍 지났다. 그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는 구십이 넘은 노인이 되셨다. 어머니는 8년 , 나는 3년 전에 우리는  둘 다 남편을 먼저 보냈다.


무조건 아내를 감싸던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기가 꺾이셨다.

그리고 또 몇년 후 어머니는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고는 완전히 다른사람이 되었다.

어디서나 거침없이 당당하 그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차라리 예전처럼 큰소리를 치셨으

면 덜 애처로울텐데...산다는게 뭘까.


이 세상에 올 때 맞이해 주던 부모님들이 순차적으

로 떠나시고  새로 가족을 이루고 살다가 또 각자의 삶으로 나뉜다.  남편은 먼저 저 높은 나라로 떠났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현장으로 떠났다.

처음 그랬듯이  역시 홀로 남기 마련이다.


나의 새댁 시절, 그리 무섭게 굴던 어머니는

오직 이 며느리만 의지 하신다. 늦은감 있는

 어머니의 홀로서기 연습이 때로 가슴 아리다.

 

산다는 것, 인생의 공식을 비교적 일찍 터득한  나는 좀 더 여유있게 '홀로서기'준비를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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