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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Sep 29. 2024

가을에는!

-마음열기

긴 연휴기간, 시댁에 들러 어머니를 뵙고

친정 형제들과 며칠을 지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만난 다양한 상황과

시시콜콜 재미있는 사건들은 아마 오래도록

내 장기기억 깊은곳에 머물 것 같다.


언니들과 우리 딸내미, 늦은감있게 결혼한

조카와 귀하게 얻은 아기,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조카딸의 강아지까지 벅적거리며 지내다 집에

오니 온 세상이 고요하다.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하실

말씀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으시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 오는 길, 애달픈 어머니의 잔상이 길게 마음에 남는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인생은 무엇일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골똘해지기도 했던 시간이다.


흐르는 세월에 신체의 기능은 점점 약해지고 정신과 마음까지 무너지는 시점이 올지도 모르

겠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서 힘이 들다는 어머니, 노년기 그 잉여의 시간을 위해 내가 준비해야 될 것은 무엇일까


어머니의 뒤를 따라야 하는 우리

한번쯤 생각해야 할 숙제인 듯 하다.  친정 형제들과의 만남,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삶의

탑을 쌓으며  때로는 그 무게에 버거워도 했지만, 함께 모여 나누는 이야기에 한바탕씩 웃고

시름도 날리는 시간이었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나 젊음의 한 가운데

있는 젊은이들 모두, 서로 현재의 삶을 보고

배우며 사람살이의 깊은 의미를 알아가게 한다.

20대의 삶을 사는 아이들과 3,40대의 어엿한 어른으로서의 조카들...


이제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들을 보며 우리가 지나 온 그 시절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아기를 비롯해 10대부터 90대까지 거의

모든 세대가 걸쳐 있는 가족들, 마치 인생 풀스토리를 영화로 보는 듯한 경험을 이번 연휴기간에 한 것이다.  


 90대 어머니의 입맛 없으신 푸념은 점점 길어지고, 직장 동료가 이해하기 힘든 기질이라고 쉴새없이 종알거리는 딸내미, 언니들과 사골 끓이 듯 나누는 어릴 적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가끔은 진지하게 듣다가 한바탕 웃기도

하면서 대상에 따라 공감 포인트도 참 다양하다. 깔깔거리며 맞장구치다가도 어느 새 피로감이

몰려 온다.  문득, 혼자살이에 벌써 익숙해졌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젓는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각기

자기 중심적 삶에 소통이 쉽지 않다.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다르기에 서로의 마음이

닿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말을 좀 들어 줘’라고 마음으로 외치지만 들어 줄 마음의 여력이 없다.

모두가 자기 안의 목소리에만 집중할 뿐인데 누군가는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야하지 않을까.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수십 년 지기들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섯 명이 몇

년만에 만나니 서로 할말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시작한 분에게 눈을 맞추고 듣고

있는데 옆에 있는분이 계속 나를 향해 다른 이야기를 한다. 조금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귀를 주고 있으면 멈추겠지 했지만 그분은

내 귀에 대고 계속 말을 하는 것이다. 안들을

도 없고 난감한 분위기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곳에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싶은

람은 없는 요즘, 왜 저럴까?하는 평가의

마음을 탈탈 비우고 누군가를 위해 귀를

준비해 보기로 마음 먹어 본다.

 

유난히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본다.

수 많은 별들의 이야기를 감싸고 이 세상의 소란스러움과 온갖 상황들을 살포시 품은

하늘을 보며 그 넓음을 닮기 소원해 본다.


사람마다 지고있는 삶의 무게를 잠시 잊을 수 있도록 벗이 되고, 응어리진 마음 풀어 내도록

귀를 열어, 저 하늘처럼 그들의 시름을 품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우리 아이들의 고민을 들으며 생각한다. 세월을 좀 살았다는 사람의 가슴은 넓고 깊어져야 한다고.


세상에서 수도없이 부딪치고 부서지는 삶의

파도에 지칠 때 자녀들이 돌아와 쉴 수 있는

엄마의 품은 한없이 넓고 바다처럼 깊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자잘한 돌팔매질에 일렁이지 않고

그대로 품어 버리는 바다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며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깊고 넓은 품의 존재이고 싶다. 이 가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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