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아침은 물에서 시작된다. 다다미방의 문을 열고 툇마루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중정을 바라본다. 수목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이끼 위에 맺힌 이슬이 반짝인다. 작은 연못은 잔잔히 놓여 있고, 공기마저 고요하다. 툇마루 앞 정원에 놓인 평평한 디딤돌 몇 개를 건너 다가가면, 수면 아래 여러 마리의 니시키고이(錦鯉)가 천천히 몸을 튼다. 몸짓은 느리고 유유하며, 붉고 흰색, 검은색, 황금빛까지 각기 다른 빛깔이 물 위에 흩뿌려진다. 발등을 스치는 서늘한 물기와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감각을 깨운다.
잉어는 동아시아에서 길상과 출세를 상징하지만, 일본에서는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친다. 급류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라는 이미지는 오래 이어져, 폭포를 뛰어넘어 용이 되었다는 ‘등용문’ 설화와 함께 입신과 성장을 바라는 상징이 된다. 5월이 되면 하늘에 잉어가 오른다. 어린이날이면 집마다 잉어 모양의 깃발, 고이노보리(鯉のぼり)를 달아 아이가 강하게 자라기를 빈다. 긴 장대에 잉어를 세로로 늘어뜨려, 물고기가 흐르듯 흔들린다. 붉고 흰색, 검은색, 황금빛까지 색을 달리한 잉어가 장대 위에서 크기 순서대로 매달리고, 바람에 가볍게 휘날린다. 공원, 강변, 학교, 관공서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물이 아니라 바람을 가르는 잉어. 보이지 않는 급류를 향해 나아가라는 뜻이 바람에 실린다.
잉어의 의미는 또 다른 의미로 읽힌다. 에도 시대 이후, 잉어는 무사의 이상과 겹쳤다. 도마 위에 올려져도 쉽게 몸부림치지 않는 모습에서 담대함과 의연함을 읽어냈고, 그 이미지는 문양과 갑옷 장식, 문신으로까지 번졌다. 일본에서 문신은 흔히 야쿠자를 떠올리게 하듯, 잉어 역시 그들의 몸에 새겨져 상징을 더했다. 물속의 몸짓은 곧 삶의 자세를 비춘다.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거슬러 오르되 소란스럽지 않은 기세. 잉어는 무사도와 닿아 있다.
정원에 이르면 잉어는 다른 모습으로 마주친다. 화려한 무늬의 니시키고이는 얕은 연못 바닥 가까이에서 천천히 몸을 돌린다. 일본 정원의 연못은 깊지 않다. 바닥의 돌과 모래, 물의 투명도를 드러내려 수심을 낮게 두는 경우가 많다. 붉음과 흰색, 금빛 무늬가 수면 아래에서 겹친다. 돌과 이끼, 낮게 번지는 지피 식물과 관목은 자리를 지킨다. 니시키고이의 느린 움직임이 공간에 변화를 준다. 멈춘 듯 고요한 정원에서 시간은 이어진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비늘이 짧게 반짝이고 이내 사라진다. 연못은 미세한 흔들림으로 리듬을 만든다.
잉어가 헤엄치는 신사나 사찰의 연못에는 수면 아래에서 수많은 동전이 반짝인다. 대부분 십 엔과 오 엔, 일 엔 동전들이다. 잉어가 출세와 상승의 상징이라 해서 동전을 던지는 전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연못은 헌금을 올리는 자리도 아니다. 물은 경계이자 정화의 상징이지만, 사람들은 잉어가 헤엄치는 수면 위로 동전을 던진다. 남은 것은 의례라기보다 습관처럼 이어진 흔적이다.
여름 축제 한가운데에는 또 다른 물고기가 있다. 유카타(浴衣) 차림의 아이들이 얇은 종이 뜰채, 포이(ポイ)를 들고 수조를 둘러싼다. 수많은 붉은 꼬리가 뒤엉킨다. 긴교스쿠이(金魚すくい), 금붕어를 건져 올리는 놀이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포이를 물속에 넣었다가 재빨리 들어 올린다. 종이는 금세 물을 머금고 힘없이 늘어진다. 한 번의 망설임에 찢어지고, 환호와 탄식이 번진다.
잉어가 위로 오르는 물고기라면, 금붕어는 머무는 물고기다. 일본에서 금붕어는 여름과 함께 온다. 낮에는 수조 안에서 햇빛 아래 흔들리고, 밤에는 노점 불빛 아래에서 붉은색이 짙어진다. 수조 안에서는 수많은 금붕어가 서로 스치듯 물을 가르며 방향을 바꾼다. 흩어져 있으면서도 한 덩어리로 보인다. 유카타 자락이 스치고, 들뜬 웃음과 재잘거림이 공간을 채운다. 금붕어는 잠시 건져 올려졌다 다시 물로 돌아간다.
금붕어의 지느러미는 투명하다. 화려하지만 연약하다. 물 위에 떨어진 벚꽃 사이를 스칠 때, 머물지 않는 빛이 또렷해진다. 에도 시대 우키요에(浮世絵)에서도 금붕어는 물결과 함께 그려진다. 순간을 붙잡는 화폭 위에서, 빛나되 오래 머물지 않는 형상으로. 깊은 곳의 잉어와 얕은 곳의 금붕어는, 같은 물속에서도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