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다 보면 개와 나란히 걷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오늘날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발걸음을 맞추고 시선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함께 건넌다.
나라마다 지역성과 전통을 상징하는 토종견이 있다. 한국에 진돗개가 있다면, 일본에는 아키타견(秋田犬)과 시바견(柴犬)이 있다. 아키타견은 묵직하고 조용한 인상이며, 시바견은 날렵하고 독립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두 견종 모두 과하게 밀착하기보다 각자의 간격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관계는 간격 속에서 드러난다.
『요괴워치』의 코마상, 『은혼』의 사다하루, 『강철의 연금술사』의 블랙 하야테처럼 애니메이션과 만화 속에서 개는 서사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관계의 흐름을 조율하는 완충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반면 일본 소설에서는 긴장을 덜어내기보다 시간과 상실을 환기하며, 인물 간의 거리를 드러내곤 한다. 같은 동물이라도 매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고,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다.
정갈하게 손질된 털과 계절에 맞춘 옷, 개와 함께 걷거나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애견 카페와 동반 출입 공간이 늘어나고, 반려 가구 증가와 관련 서비스 확장이 맞물리며 개는 어느새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어디서나 마주치는 일이다..
시부야역(渋谷駅) 앞에는 충견 하치코 동상(ハチ公像)이 서 있다. 하치는 아키타견(秋田犬)으로, 도쿄대 농학부 교수였던 우에노 히데사부로(上野英三郎)와 함께 시부야역까지 매일 아침 동행했다가, 귀가 시간에 맞춰 다시 마중을 나가던 개였다. 교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도 약 9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렸다. 매일 같은 시간, 돌아오지 않는 발걸음을 향해 몸을 세웠던 이야기는 도시의 신화가 되었다. 1930년대 신문 보도로 알려지며 동상이 세워졌다. 유행을 선도하는 시부야 한복판에서 하치는 오랜 기다림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하치가 죽은 뒤 동상이 세워졌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금속 징발로 한차례 철거되었다가 전후에 복원되었다. 하치는 우에노 국립과학박물관(上野国立科学博物館)에 박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하치코 동상(ハチ公像)은 크지 않지만 도시 기억의 상징적 좌표다. 하치코 구치(ハチ公口)라는 역 출구 이름, 100엔 순환버스, 각종 기념품과 영화 속 재현으로 하치의 이야기가 도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하치는 도쿄를 대표하는 이미지 가운데서도 빠지지 않는 얼굴로 남았다.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 경내의 유슈칸(遊就館) 앞에는 군마와 함께 군견을 형상화한 동상이 서 있다. 특정 개의 조형물이 아니라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군견을 가리킨다. 동상은 실물에 가까운 크기의 독일 셰퍼드 형상이다. 개들은 경계와 수색, 추적 임무를 맡았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동물을 기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군국주의의 역사와 분리하기는 어렵다.
전쟁은 동물에게도 잔혹했다. 군견은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고, 일부 전쟁에서는 폭발물을 장착한 채 전차에 접근하도록 훈련되기도 했다. 혹독한 시간 속에서도 사람 곁에 남아 있었다. 동상 앞에 놓인 물병들은 갈증에 시달렸을 개들을 떠올리며 방문객이 남긴 흔적이다. 군견 동상은 전쟁이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충성과 희생이 어떤 맥락에서 기억되는지를 묻는 장소이기도 하다.
개는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삶의 흔적을 남긴다. 하치코가 한 사람을 향한 충정으로 시간을 견뎌냈다면, 군견은 전쟁의 시간 속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개는 주인을 바라보고 곁을 지키며, 때로는 역사 속 한순간에 머물렀다. 개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기도 한다. 기다림과 임무, 충정과 충성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인간과 개가 맺어 온 관계는 오래도록 서로를 향해 있었다. 그 사이에 흐른 정서는 말없이도 사라지지 않는다. 발자국처럼 시간 위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