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by 공작

대만 여행에서 엄마와 같은 방을 썼다. 엄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훌렁 벗었다. 옆에서 딸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말없이 웃었다. 낯설고도 익숙한 장면이었다. 욕실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에는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한때 나를 이끌던 단단한 어깨는 둥글게 말려 있었고, 걸음은 느릿했다.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오래된 한 장면이 불쑥 되살아났다.


일요일 아침이면 엄마와 할머니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안덕원 목욕탕으로 갔다. 타일바닥에 앉아 엄마에게 때를 밀릴 때면 늘 아팠다. “가만히 좀 있어!”라는 호통과 함께 손바닥이 날아왔다. 그 손은 매웠고, 물보다 뜨거웠다.


호텔의 하얀 조명이 욕실문 아래로 새어 나올 때, 나는 다시 그 시절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 엄마의 알몸을 보며 느꼈던 두려움과 친밀함, 그 모순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엄마는 그저 나를 씻긴 것일 뿐인데, 왜 그 손길이 그렇게 아프게만 느껴졌을까.

엄마의 손은 언제나 나를 닦이고, 밀고, 다듬으며 사랑했다. 여행지의 욕실에서 나는 그 손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언젠가는 내가 엄마를 씻겨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문득 사랑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젊은 날의 엄마가 나를 씻기던 그 장면처럼, 이제는 내가 엄마를 닦아드릴 차례였다.


세월이 우리 몸의 때를 벗기듯, 사랑도 그렇게 흘러 서로를 닦아내며 완성되어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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