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찾는 시간
가족, 우리가 더 사랑했더라면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처음엔 며칠이면 퇴원할 줄 알았다. 발가락을 절단하는 수술이었지만, 의사는 당뇨 합병증이라며 수술하면
회복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수술부위의 상처는 낫지 않았고, 아버지는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자, 엄마는 일을 계속해야 했고 나는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결국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분은 성실하고 따뜻했다. 엄마는 요양보호사와 교대로 병원을 오가며 지쳐갔고,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그 말끝마다 나는 울컥했지만, “괜찮아요, 아빠”라는 말을 끝내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형제 네 분 중 세 분이 당뇨로 세상을 떠났다. 술을 사랑했고, 단 음식을 즐겼고, 건강은 늘 뒷전이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부터 힘든 일을 한 후 술로 버텼고, 몸을 돌보는 일은 언제나 나중이었다.
삶이 너무 버거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사치 다는 말은 우리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술과 담배, 인스턴트 음식으로 버텨온 세월은 결국 몸을 무너뜨렸다. 틀니를 해드리고, 녹내장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린 것이 떠오른다.
그 모든 비용은 자식들의 몫이었지만, 그걸로 원망한 적은 없다.
다만, 아버지가 스스로를 조금만 아껴주셨다면 어땠을까.
가난하면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엄마의 바람대로 , 내가 좀 더 가족을 위해 희생했더라면
조금 나았을까?
전화기 너머로 아빠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병원비 많이 나왔을 텐데 미안하다.”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그 마음을 나는 왜 받아주지 못했을까. 그저 “걱정 마세요. 얼른 나아요.” 한마디면 됐는데, 나는 늘 침묵으로 답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삶은 아버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도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병실을 나서던 날, 아버지의 마른 손을 꼭 잡았다.
“아빠 내가 누구야~“
“지희”
겨우 나를 알아봤다.
가족은 그렇게, 고통을 나누며 살아간다. 때로는 돌봄으로, 때로는 미안할지라도.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쳐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힘든 시기를 거쳤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좀 더 편하게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 있었을까?
어느 날엔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는 아직도 아버지가 병실에 있었다.
병원에 간 내게 아버지는 바쁠 텐데 어서 가보라고 했다. 자신은 혼자 있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쓸쓸히 돌아가실 것을 알면서 병실을 나왔다.
병실을 나오자 막 들어오던 어린 남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남동생을 보자마자
흐느껴 울었다.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꿈에서의 감정이 잊히지 않아 수건에 얼굴을 묻고 어지러움을 잊은 채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