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찾는 시간
장례식이었다.
아버지를 알고 지내던 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중 아버지의 오랜 친구 한 분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 너희 아버지 원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갔으니까. 걱정 마라.”
그 말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늘 기세가 등등했고, 얼굴도 잘생겼으며, 무서울 게 없던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았고,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했다.
엄마는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의 말처럼, 아버지는 원 없이 살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적어도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는 아니었지만, 성공도 실패도 해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장례식장에서 손님을 맞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고운 수의를 입은 아버지의 얼굴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작별 인사를 드리자 엄마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빠를 보내드리는 자리인지, 엄마의 설움을 쏟아내는 자리인지 모를 애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화장터에서 나는 관 위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정말 이별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때 내 옆에서 조용히 작은 손이 올라왔다. 아홉 살 딸아이의 손이었다.
딸아이는 망설임 없이 할아버지의 관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작은 손이 나를 붙잡아주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내 손을 포개었다. 아이의 손위에, 그리고 아버지의 관 위에.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살아계실 때 더 많이 자주 손을 잡았어야 했다.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가족은 서로를 놓지 않는다.
딸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 손을 얹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나 그리고 딸아이로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화장터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관은 따듯했다.
침묵이 귓가를 울렸다. 우리가 좀 더 일찍 손을 잡았더라면, 그때도 지금이 순간처럼 온기가 있었을 거라 말하는 듯했다.
#보내지 못한 편지
넥타이를 버리고 작업복을 입으신 아버지의 희생을 압니다.
잘해보려다 결국 자존심마저 버려야 했을 테지요.
혼자 국을 데워 밥을 먹고 얼음처럼 차가운 새벽길을 나섰던
아버지의 매일매일을 함께 짊어지지 못했던 젊은 날을 뉘우칩니다.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무거웠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도 아버지가 사다 주신 아이스크림을 먹던
천진난만한 행복한 날이 있었습니다. 맛있다며
우리를 데려가 먹이던 순두부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 순간들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버거워했던 제 자신을 용서해 주세요.
지난 꿈 속에 멋진 브라운 모직 코트를 입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계신 곳 또한 아버지의 모습처럼 멋진 곳이겠지요.
그곳에서는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남은 시간 엄마와의 오랜 응어리도 풀어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태양이었고, 아버지가 남겨 주신 추억으로
저는 글을 쓰며 다시 그림자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웃음소리가 없이도 행복을 주는 꽃처럼 아버지는 저의 행복이었습니다.
매일 괴로운 삶이었으나 떠나지 않고 지켜 주어 감사합니다.
축제 같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이세 상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장 멋진 분이었습니다.
먼 훗날에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제가 아버지의 태양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