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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달빛 Apr 05. 2021

멈추면, 내 안에서 리듬이 흘러나와!

요가를, 철학하다 ③ - 송장 자세(사바아사나)를 하면서

요가에 관한 글을 쓰기에는 초보 수준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 요가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요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고 자신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가를, 철학하다'라는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정해봤다. 잠시나마 진지하게 삶의 방향을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미에서다.


요가 매트 위에서 주어진 시간은 온전히 뻣뻣한 내 육체에 의지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동작을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집중하여 온갖 잡념을 몰아내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곁눈질로 다른 사람의 동작을 힐끗 보며 은근한 경쟁심이 생기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며 딱딱하게 굳어서 쉬운 동작도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며 자책을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가 동작 중에 좋아하는 자세가 있다. 일명 '송장 자세'라고 하는 '사바아사나'이다. 나무토막처럼 굳은 내 몸을 꺾고 꼬고 피면서 고생한 육체를 완전히 쉬게 하는 동작이다.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모든 기관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채로 편안하게 휴식하는 자세다. 불이 꺼지고 고요해진 어둠 속에서 잔잔하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난 자연스럽게 호흡을 한다. 그리고 동작을 따라 하기 위해 긴장을 한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도 해주듯 5분의 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 된다.


사실 이 동작은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평소 힘들면 집에서도 드러눕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 겨울에 뜨끈한 방바닥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힘을 빼고 눕는 자세가 빈둥거리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벌떡 일어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요가 과정에 송장 자세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지 모르겠다.






프랑수아 누델만의 '건반 위의 철학자'에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세명의 철학자인 사르트르, 니체, 바르트가 나온다. 그들은 요동치는 세상 밖을 조롱하듯 평온하게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에게 집중한다. 사르트르는 타인에게 강요된 시간성에 쫓기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껏 연주한다. 그는 피아노를 치면서 지나간 감정과 재구성해낸 꿈의 조각들을 불러와 멈춰진 상상계를 분주히 작동시킨다. 사르트르에게 피아노는 타자에게 조종당하거나 단절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활동이었다.


모든 기성 가치를 전도시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시적 멈춤과 불규칙한 심장박동, 그리고 자신에게만 있는 독특한 템포가 요구된다. 사르트르에게는 피아노 연주가 일시적 멈춤이었고 불규칙한 심장박동이었으며 독특한 템포였다.


니체는 어떤가! 니체의 광기가 절정에 달했던 말년에도 그는 피아노 연주를 멈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피아노 연주는 단순히 악보에 적힌 음표를 음악으로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둘러싼 세계를 창조했다. 니체는 세계가 귀를 통해 자기 안에 들어오도록 했으며 무엇이 자신의 건강에 좋은지,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지 판단했다. 니체에게 피아노는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에게 음악은 산책과 정오의 명상처럼 그의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필수 활동이었다.


모든 예술은 리듬과 화성의 도움으로 추동력과 균형 사이의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리듬은 니체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꿔주었고, 육체가 지고 있던 무거운 감정의 짐을 덜어 내어 다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출 수 있게 해 주었다.


피아노를 대하는 모습이 조심스럽게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던 바르트. 그에게 음악은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었고 음악의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에서 깃든 순수한 행복이었다. 바르트 역시 악보가 주어진 지시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과 템포로 연주했다. 그는 미숙함마저 유지한 채 소리의 우주가 몸 안으로 들어오길 원했다. 그리고 그는 온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연주할 수 있는 여유를 바랐다.


일상은 타자에 의해 강요된 속도로 흐른다. 그 속도는 엄마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의 종종걸음일 수 있고,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는 집단적 권력의 생체 리듬일 수 있다. 강요당한 리듬을 그대로 좇지 말 것. 메트로놈에 얽매이이지 말 것. 내 신체가 원하는 바를 악보의 흐름과 연결할 것. 아마추어리즘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던 바르트의 노력도 이와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요가의 송장 자세는 육체의 움직임에서 '멈춤'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모든 긴장의 상태를 느슨하게 풀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세계와 타인을 의식하는 긴장의 상태는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타인에게 휘둘리는 삶을 산다. 요가에서 '멈춤'의 시간은 세 명의 철학자들이 피아노 앞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자 했던 내면에 몰입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멈춤'은 무엇인가 했을 때 얻고자 하는 행동의 결과물과는 다르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사르트르가 멈춰진 상상계를 자극하는 순간이며, 니체가 산책과 정오의 명상처럼 그의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려는 활동이었으며 바르트가 자신만의 속도로 연주할 수 있는 여유를 찾고자 했던 시간들이었다.


한 번쯤은 자신의 인생에서 '멈춤'이 필요하지 않을까? 멈춤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하지 못하는 도태의 의미가 아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는 기쁨을 누렸던 세명의 철학자들처럼 '멈춤'은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 몰입하고 타인의 속도가 아닌 자신만의 리듬과 템포를 찾는 과정인 것이다.






요가를, 철학하다


요가를, 철학하다 ① - 물구나무서기(시르샤사나)에 도전하면서

요가를, 철학하다 ② - 송장자세(사바아사나)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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