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은 도대체 왜?
<스포일러 주의>
+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제목에 공식적으로 사용될 만큼, <외계+인>에서 +의 역할은 단순한 기믹에 그치지 않는다. 첫째로, 이야기는 장르의 덧셈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유튜브 리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각종 장르의 뒤섞임이다.
1. 고려 말, '신검'을 찾기 위한 일종의 케이퍼 무비
2. 고려말, 도술과 신선이 존재하는 세계
3. 현대,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한 아포칼립스
4. 현대, 고도로 발달한 로봇과 그들의 기형적인 면모에서 느껴지는 호러
5.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시간여행.
적어도 <외계+인>에는 이 다섯 가지 장르가 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마지막 5번, 그러니까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이 더해졌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5번이 앞의 모든 요소들을 압도한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편집'이다. 영화는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고, 편집은 앞의 장면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오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감독의 신적 권능이다. 그러니 시간 여행을 소제로 삼은 이상, 각 서사의 내용, 인물의 매력, 최동훈식 대사 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결국, 작품만을 때 놓고 본다면 어떻게 편집으로 유려하게 시공간을 이동하는지가 핵심이다. 편집이 자연스럽거나 편집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없다면, 나머지 요소들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이 영화는 맥이 빠지고 만다.
하지만 이 부분이 가장 실망스러웠다는 점이 <외계+인>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먼저, 편집의 힘을 알 수 있는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알프레드 히치콕은 <싸이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배수구와 죽은 여주인공의 눈동자를 이어주는 편집을 사용했다. 욕조에서부터, 바로 그 욕조 옆에 누워있는 인물까지. 사실상 카메라를 이동해도 될 공간이지만 히치콕은 편집을 이용했다. 욕조로부터 시체까지의 짧은 공간을 생략하고, 배수구와 눈동자를 원의 이미지로 겹치는 것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작품 안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 '630년'의 시간을 건너가고 있음에도 전혀 편집에 대한 열의가 없어 보인다. 조금 심하게 말해보자면, 상영 도중 다른 영화가 갑작스럽게 틀어진 듯한 '끊김'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왜 이 장면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 왜 이 장면에서 미래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 스스로부터 납득할 수가 없었다. 우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특정한 소제로 시공간이 이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에 긴박한 소제가 등장했을 때 인물들이 농담을 주고받는 '너스레 장면이 과거로 등장하고, 과거가 긴박해졌을 때, 감성으로 가득 찬 현대의 장면이 이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앞 장면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고, 그냥 이유 없이 나오고 있는 해당 시간에 집중하다가, 또 영화가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면 다시 앞 장면을 까먹고 해당 시간에 집중하였다. 그러다 보니, 정확히 내가 뭘 본 것인지를 알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떠한 소제나 이미지, 대사를 기점으로 시공간이 이동할 때의 쾌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편집의 또 다른 기능으로는, 이른바 '돈오 효과'가 있다. 처음에는 상이한 두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관객이 작품의 전체적인 틀을 '돈오'하는 순간을 편집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계+인>은 어떤가? 고려의 김태리와 현대의 아이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암시된다. 류준열이 소지섭이라는 사실도 현대 인물이었던 김의성이 고려 시대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미리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니 영화는 이야기의 '접점'에 느낄 쾌감을 이곳저곳에 흘리고 다니고 있는 꼴이다. 이미 이야기의 틀을 관객이 알고 있는 이상, 시간 이동은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언젠가 최동훈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 정도면 관객이 알겠지, 라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최대한 복잡하고, 알기 어렵게 해야 한다. 관객은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 천재가 된다."는 말을 남겼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관객을 '수재' 정도로 본 듯하다.
이 끊김이 가져다준 가장 큰 단점은 서사의 늘어짐이다. <외계+인>은 2시간 22분에 달하는 상당히 긴 영화이다. 후반부의 액션 장면과 각종 세계관 설명 장면을 제외한다면, 결국 2시간 동안 이 영화는 신검을 찾는 이야기와 외계인이 쳐들어와 서울이 붕괴되는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러니 영화의 중반부에서, 나는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 아직까지 신검만 찾고 있지? / 왜 아직까지 서울이 멀쩡하지?"
영화의 각 이야기를 1시간씩으로 분리해보자. 그러나 두 시간이 교차하는 편집 때문에, 관객은 1시간의 내용을 2시간 동안 본 것처럼 느끼게 된다. 내가 딱 그러했던 것이다. <외계+인>이라는 제목이 외계인이 등장하는 현재와, 신묘한 인간들의 세계를 연결하는 +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면, 편집은 <외계-인>에 가깝다. 애초에 인간이 없는 외계에서, 인간을 빼버리는 이상한 공식. 게다가 혼란스러운 편집 때문에, '-'가 뺄셈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연결의 부호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외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