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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씨스터 Oct 11. 2022

가장 생명력 있던 때 떠올렸던 죽음

죽음


단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무거움과 어두움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내가 처음 '죽음'이란 단어에 생생함을 느꼈던 때는

가장 생명력이 있게 살고 있는(?) 살아가던(?) 10대이다.


흔하다고 할 수 있는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 3~4번 정도 경험해본 듯하다.)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세상의 속도가 느려지고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식은땀이 나고, 필름이 끊긴다.


그렇게 눈을 떠보면

나를 향해 다급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보이고

어딘가에 누워있다.


'아... 나 쓰러졌구나..'


그 이후 한 줄의 눈물과

타박상으로 인한 고통이 함께 나오면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잠시 필름이 끊긴 그 시간은

아마 매우 짧은 시간이었을 테다.

그런데 그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고,

영화에서 보면

죽기 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쓰러지고 나서

눈을 뜨지 않으면

죽었다는 걸 텐데

눈을 뜨고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죽음에 대해 가깝게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됐다.


크게 2가지


하나, 죽음과 가까웠을 때 나의 곁에 있을 사람은 누구일까?

안타깝지만 가족과의 관계에 아쉬움과 실망을 안겨줬던 사건이다.

흔하고 흔한 증상이라지만

나에게는 죽음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 큰 사건이었는데

내 곁에 가족은 없었다.

아직 글로 담기 부끄러워 자세히 적지 않겠지만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그 시간에

가족은 나의 두려움을 매우 가볍게 생각했고

나는 우리의 관계와 거리에 실망했고, 단념한 사건이다.



하나, 죽기 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감사하게도

어차피 죽으니까 막살자는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당장 죽어도 아쉽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엔 미래를 위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현재의 시간을 사용하는 때가 많은 건 모순적이지만


그래도 죽음을 생각했더니

오히려 내일을 기대하게 됐다.


하루하루 잠이 들 때 내일의 기대감에 안겨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서 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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