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태령 역 즈음에서 지하철 전력공급방식 변경으로 불이 꺼져 책 읽기를 잠시 멈추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 핸드폰을 하고 있어서 멈출 기색이 없네. 이럴 땐 또 집중력 대단한걸? 키키 (마침 불이 꺼짐..)
5. 아,, 바지가 좀 낀다. 저녁에 샐러드 먹어야겠다. 오이 썰어 넣으면 맛있는데 남편은 오이를 안 좋아해서 많이 살 수가 없다.(불이 꺼져 고개를 들었는데 왜인지 바지가 낌.)
6. 옆자리는 임산부좌석. 나도 저 자리를 찾아 앉을 때가 있었는데.. 얼마나 힘들까?(남태령역에서 임산부가 승차함) and so on...
텍스트와는 전혀 별개의 생각에 빠지는 나의 미천한 집중력은 정말 비루하기 그지없었다. 눈은 책을 읽고 있지만 (좀 더 솔직히는 읽고 있다고 착각) 생각은 다른 곳에서 있어 몇 문단을 허탕 치길 반복한 것이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 뒤 다시 몇 문장을 뒷걸음질 쳐 다시 읽어 내려가지만 또 비슷한 문장에서 나의 가난한 집중력은 그만 힘을 잃고, 동시에 길을 잃고야만다.
#Concentration wins all
몇 해 전 영어학원을 다닐때다. 그 학원은 독특하게도 무조건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어 거의 외울 지경으로 읽게 한 뒤 영상을 찍게 하는 교육방식을 추구했다. 그러니까 학원이지만 펜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영어선생님 Terry는 큰소리를 문장을 읽을 때 제발, 반드시, 꼭그 문장만 생각하라고 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읽는 것은 그저 노동일뿐이라며, 뜻이나 뉘앙스를 이해하면서 읽으려 노력하면 공부가 된다는 게 그녀의 철칙이었다. 때때로 정신을 놓고 껍데기 알파벳만 영혼 없이 중얼댈 때면 가차 없는 그녀의 피드백이 돌아오곤 했으므로 한 줄 한 줄 정성을 다해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6개월간 바로 내 눈앞의 문장에 집중하고 뜻을 파악하려 애썼을 즈음, 영어실력의 변화보다 먼저 찾아온 것이 있었다. 바로 다양한인풋에 대한 집중력과 이해력의 상승이었다. 친구들의 말도 경청하게 되니 깊고 진솔한 대화도 가능해졌고, 뉴스도 흘려듣지 않고 책 한 줄도 마음을 다해 읽었더니 자연스레 인사이트도 생기는 게 체감될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다시 바닥났지만...) 당시의 집중력은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큰 무기이자 타인에 대한 너른 이해의 원천이었다고 생각한다.
퇴근길, 숏츠를 보며 기억에도 남지 않을 영상들로 머리를 어지럽히던 내가 다시 그때의 영어학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 어쩌면 그때의 그 집중력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