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 중 하나가 “~했어야 했는데”라는 말이다. 그 말은 한숨처럼, 자책처럼, 혹은 아쉬움처럼 흘러나온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를 붙잡고 현재를 소비한다. 이는 감정적뿐만 아니라, 뇌과학적으로도 우리에게 해롭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신경과학자 사라 라자르(Sara Lazar)는 명상과 뇌 구조에 대한 연구에서, 사람이 자주 과거를 후회하거나 자책할수록 뇌의 편도체(amygdala)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스트레스와 불안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편도체는 뇌에서 ‘위험 반응’을 담당하는 감정의 센터다. 즉, “~했어야 했는데”라는 말은 실제로 우리 뇌를 위협 반응 상태로 몰아넣고, 심하면 현재를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물론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후회로 이어지고, 행동 없는 자기 연민으로 끝난다면 독이 된다. 후회는 의미 있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에만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그때 운동을 시작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면서도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보다는 “지금이라도 하루 10분이라도 걸어보자”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사람은 과거의 감정보다 현재의 인식에 따라 삶의 만족도를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즉, 우리는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지금의 태도와 선택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뇌는 습관과 반복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가소성(plasticity)을 갖고 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책 <시크릿>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안 좋은 생각을 하면 안 좋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렇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과거에 어떤 선택을 했든, 지금부터 새로운 선택을 반복하면 뇌가 달라지고, 인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에 실패했어도,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 사실이다.
사람은 후회하는 말로 자신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준다.
“그때 그렇게 했어야지.”
“그러게 내가 뭐랬어.”
상대를 위하는 조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자존감과 감정을 무너뜨리는 말일 수 있다. 오히려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그 실수를 들춰 “그때 그렇게 하지 말랬잖아”라고 말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 말은 단지 내 말이 맞았음을 확인받고 싶은 감정적 승리일 뿐, 관계에도, 상황에도, 아무런 생산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해보자.
“다음에는 이런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이런 식으로 해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런 말들은 비난이 아닌 제안이며, 상대를 지혜롭게 돕는 방법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관계를 지키고자 한다면, 상대를 위한 말은 늘 앞을 향해야 한다. “~했어야 했는데”라는 말은 미련과 후회의 언어다. 그 말에는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없다. 차라리 그 에너지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 나를 살리고 관계를 살리는 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자는 말, 바꿔보자는 말, 함께하자는 말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나를 구하고, 누군가를 구하는 진짜 말이다. “~했어야 했는데”가 아니라, “지금부터 이렇게 해보자”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1807~1882년)의 말로 끝마침을 하려고 한다.
과거를 애절하게 들여다보지 마라. 다시 오지 않는다.
현재를 현명하게 개선하라. 너의 것이니.
어렴풋한 미래를 나아가 맞으라. 두려움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