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매 Sep 12. 2020

어느날 내가 채식을 선언했다


나는 채소를 좋아한다.


하지만 건강하고 날씬한 몸을 갖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에 적어도 한번은 꼭 고기나 생선, 달걀을 챙겨먹었다. 아는게 병이라고, 다이어트, 영양학에 관심이 많아 혼자 독학으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하루에 내 몸무게에 비례하여 몇 그램의 단백질이 필요한지 알아보고, 부족하지 않게 채우려고 애썼다. 다른 반찬 없이 된장국에 밥말아 후루룩 먹는 엄마에게도 단백질을 챙겨먹으라며 꼭꼭 잔소리를 했었고. 


하지만, <What the Health - 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다큐멘터리를 보고 여태 내가 알고 있던 건강에 관한 상식이 와장창 깨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NDj0aNdfRLQ


만성 염증, 즉 나쁜 염증은 피를 타고 온몸을 순환하는 몸 속 쓰레기다. 


현대인이 겪는 만성 염증 신호들

1. 피곤함을 느끼고 에너지가 없다

2. 소화불량, 변비가 있다

3. 몸이 자주 붓는다

4. 이유없이 결리거나 통증을 느낀다

5. 코가 자주 막히거나 푼다

6. 집중이 잘 안되고 정신이 혼미하다

7. 치은염, 치주염, 구내염이 자주 생긴다

8. 피부 트러블이 발생한다

9. 두통이 잦다


만성염증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동물성 고단백/고지방 식품과 가공식품이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들 - 소, 닭, 돼지, 닭고기, 생선, 달걀, 우유, 치즈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럼 유기농/ 저지방 고기를 먹으면 되는 것 아니야?
고기를 먹지 않으면  단백질은 어디서 얻지?
탄수화물이야말로 살찌는 원인이지 않나?


다큐멘터리는 여기에 대해서도 조목 조목 설명한다. 결론을 우선 말하자면,

동물의 사체에는 유기농/ 동물복지 등 어떻게 생산되느냐에 상관없이 박테리아 독소, 환경 오염물질이 축적되어 있으며

단백질은 식물로부터 비롯되며 인간은 (채소 고기를 모두 먹는) 잡식동물이 아니라 (채소와 곡물을 먹는)혼식동물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단백질이 필요하지 않고,

우리가 살찌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탄수화물들 - 빵, 떡, 면요리에 함께 들어가는 설탕과 지방이 살찌게 하는 것이지 자연에서 오는 탄수화물 그 자체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 육류와 가공식품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바로 비싼 고기와 유제품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한 기업들에 의한 자본의 논리 때문이다. 자연에서 시간을 들여 자라나는 채소보다는 육류와 유제품,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 할 수 있는 가공식품이 돈벌이가 되었고, 이러한 음식들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육가공, 낙농업 기업들은 육류와 유제품이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역시도 국가경제를 위해 기업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고. (너무 음모론적인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같은 원리로 인해 담배가 건강에 좋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다니 충분히 가능한 일지도.)


아무튼 이러한 사실을 알고난 뒤, 는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기로 했다.


자연식물식(Whole Food Plant Based)이란든 종류의 고기, 생선, 유제품을 피하고 고도로 가공된 오일과 가공식품도 피하여 통곡물과 채소, 과일, 콩류를 주식으로 먹는 것이다. 

식물성 식품이라면 기름과 가공식품도 제한하지 않는 '채식'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은 채식, 정크비건이 되어 내 몸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다. 동물복지, 환경보호의 측면을 좀 더 강조하여 먹는 것 뿐 아니라 입고 쓰는 모든 생활까지도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것을 추구하는 비건에도 관심은 있지만, 우선은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물론 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육식을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가공식품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이상 완벽할 수는 없을거다. 가족들과의 식사나 회사에서 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어느날 내가 너무 먹고 싶어질수도 있겠지.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볼 것이고, 무엇보다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도전해보고 싶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 가장 어려운 단계가 남았다.

어느날 갑자기 고기, 달걀, 우유를 먹지 않는 나를 걱정하고 권할 남자친구, 가족, 친구, 회사 동료들에게 나의 도전을 알려야 했다. 무엇보다도 나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고기를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앞으로 우리가 데이트를 하는 동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알리는 것이 미안하고 걱정되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 그는 카페에 먼저 가서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에게 입을 열었다.

나 이제 채식해보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