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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Nov 04. 2024

장미와 옥색 한복

어떤 여자의 일상 이야기

어머님전상서


작년 5월 25일,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향년 90세.

요양병원에 근 8개월을 누워계셨기에 다른 가족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계실 때도 이별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

이곳저곳 편찮으신 데가 많긴 하셨어도 워낙에 강한 분이시니 그곳에 조금 머물다 나아지면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오시겠거니 했다. 돌아오시면 또 이전처럼 아픈 다리와 팔로 채소밭을 가꾸시고, 기어 다니며 약을 치시다가 건강 생각하라는 아주버님의 호통에 성을 내시곤 다시 굽은 손으로 김치를 담고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시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과 함께 편찮으신 어머님을 뵈러 갈 때면 어머님은 우리에게 미안해하시면서

 "아이고, 야야. 내가 누워서 어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기가 불편해서

 "어머님,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세요? 빨리 나아 집으로 가셔야지요. 그런 기도 말고 자식들 다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 좀 해 주세요." 했다. 

누워계신 어머님께서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드셨으면 어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다 하셨을까.....

그러나 그때의 내 마음은 어머님께서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몹시 불편했을 뿐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기왕에 하실 기도면 자식들을 위해 하시면 좋을 텐데, 하는 철없는 마음이 컸다.


어머님을 뵙고 온 날이면 몹시도 마음이 서글펐지만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또 출근하여 정해진 대로 일을 하고집안 살림을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어머님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 눈앞에 오고 가는 아직 덜 늙고 덜 아픈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일들로 복잡하게 지내면서 일상 생활로 돌아가곤 했다.




빈소에서 손님들을 맞이할 때도 덤덤했으나 입관할 때부터 슬픔이 다가왔다.

장례지도사가 누워계신 어머님께 마지막 하고 싶은 말들을 하라고 했다. 시아주버님 내외분과 시누이, 남편이 차례로 붕대가 감긴 어머님의 손을 잡고 한평생 고생 많으셨으니 이제는 좋은 곳으로 가셔서 먼저 가신 아버님과 편히 지내시라는 마지막 말들을 나누었다.

내 차례가 되어 어머님께 다가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는 나에게 장례지도사가 돌아가신 어머님의 귀는 아직 열려있으니 뭐라도 이야기하라고 했다.

눈물만 흘리며 어머님을 부르던 나는, 그동안 나로 인해 서운한 일이 있었으면 모두 용서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서운한 일로 따지자면야 갑의 자리에 계시던 어머님보다 을의 위치에서 구박받던 내가 더 많았겠지만 어머님께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 또한 마음속 한편에 넣어둔 어머님에 대한 섭섭함을 그 순간을 통해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영정 사진 속의 어머님은 작은 며느리인 내가 시집올 때 해 드린 옥색 한복을 입고 계셨다. 

생전에 형님이 수의 얘기를 드리니 어머님께서는 사진 속의 그 옥색 한복을 입고 가시겠다고 하셨단다. 

아주버님은 어머님께 제일 좋은 수의를 입혀 드렸고, 형님은 아랫동서인 내가 해 온 옥색 한복을 깨끗이 손질해 두셨다가 입관하신 어머님께 고이 덮어드렸다.




어머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다만 어머님에 대한 기억은 어머님이 생전에 솜씨 좋게 해 주시던 음식들에 남아있다.

콩잎 김치, 깻잎 무침, 명절이면 쑤어주시던 메밀묵과 손두부, 시원하고 깔끔하던 추어탕과 어느 집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맛있던 김장김치....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어머님의 굽은 손길로 만들어졌던 그 음식들의 이름을 떠올리자 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그것이 어머님의 사랑이었음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장미꽃이 눈부시게 화려한 5월 하순, 화창하고 맑은 날 새벽에 돌아가셨고 음력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에 아버님 곁에 나란히 누우셨다. 나는 안다. 어머님께서 극락에 가셨음을.

생전에 겉으로는 사나웠으나 속은 그토록 따뜻하셨던 분이란 것을.....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들을 위해 힘들지 않게 하시려고 애쓰셨다는 것을.

그리고 내게는 남겨진 마음 아무것도 없이 놔주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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