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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바 하나만큼의 위로

17. 어떤 여자의 음식 이야기

by 겨울꽃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힘든 처지에 놓인 상대방에게 위로차 건넨 말이었는데 뜻밖에도 그 사람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느냐며 화를 낸다. 황당하고 섭섭하지만 이런 일들은 일상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타인을 통해 위안을 얻는 방식도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이는 진심 어린 공감의 말에 위로를 얻고 어떤 이는 말보다는 속 깊은 배려에서 위안을 얻는다. 또 다른 어떤 이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굳이 누군가가 위로하겠다고 다가가는 것이 오히려 설상가상의 힘듦을 제공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평소 그 사람의 성품이나 자존심, 자존감의 강도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섣불리 위로하겠다고 다가갔다가는 가스불에 손을 얹은 것처럼 내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전부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눈앞에 벌어지는 힘든 일들로 인해 멘털이 무너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남들이 해주는 '위로의 말'을 순순히 '위로'로 받아들이기도 쉽지가 않다. 자신의 힘든 상황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도 없을 뿐 아니라 황폐해지고 피폐해진 마음의 끝에는 상대가 누구든 얼마든지 원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위로가 필요한 그 사람을 위해서 했던 '말''독'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겉으로는 '그 사람을 위해서'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펼쳐놓고 보면 실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타인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불행을 위로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해서 이런 일은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의 인격과는 상관이 없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본질만 생각하면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위안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특별히 앙심을 품고 나의 불행에 고소해할 사람이 아니라면 어쨌든 그 사람이 자신의 귀한 시간을 쪼개어 나를 찾아온 것은 힘든 나를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 그 한 가지뿐일 것이다.

비록 그가 남기고 간 위로의 말속에 들어있는 맞지 않는 충고나 조언들이 송곳처럼 내 마음을 후벼 파는 불편함을 주었더라도, 나를 향한 그 마음 하나만을 생각한다면 신물처럼 올라오는 약한 분노 정도는 그냥 꿀꺽 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쉰을 넘기고 갱년기를 맞으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몸소 겪다 보니 누군가를 위로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누군가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잠 못 이루고 출근한 날, 고사리 같은 작은 손 하나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선생님...

손에 들린 초콜릿바 하나를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놓는 꼬마 숙녀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잠시 울컥해지는 것은 역시나 갱년기라서일까.

고마워~~

'위로'는 초콜릿바 하나 정도가 딱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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