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짧은 생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단 하루만 허락된 삶이니까요. 호기심 많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하루살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워질 정도입니다. 마침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새 한 마리가 불쑥 말을 건넵니다.
"어쩔 수 없지, 너에게는 내일이 오지 않을 테니까."
주변에 꼭 이런 식으로 확인사살(?) 해주는 사람들이 있죠? 하루살이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 않나요! 하지만 하루살이는 차분하게 '내일'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내일이 뭘까?'라고 말이죠.
그림책 <하루살이가 만난 내일>은 내일이 허락되지 않은, 내일이라는 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하루살이가 숨바꼭질같이 손에 잡히지 않은 '내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그립니다. 하루살이는 과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일은 오늘의 다음 날, 기약된 남은 날, 살아갈 미래입니다. 당연한 내일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와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처지는 확연히 다르지요. 이런 하루살이가 내일을 찾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 참으로 문학적인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내일을 향한 숨바꼭질은 하루살이이기에 더 빛이 납니다.
하루살이의 여행 동안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어린 새싹, 시들어가는 꽃, 금붕어, 애벌레, 소녀, 노인, 여인, 늑대, 고양이 그리고 하얀 꽃까지. 이들은 내일에 대한 물음에 각자의 생각을 말하지요. 각자의 내일은 너무나 다릅니다. 어린 새싹에게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 소녀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한 것, 곧 아이를 출산할 여인은 선물 같은 기다림입니다. 반면 시들어가는 꽃은 씨앗을 떨굴 저 아래 깊은 것, 온종일 어항에 갇혀 있는 금붕어는 맴돌기만 하는 것뿐이라고 자조하죠. 언제나 새로운 물결을 받아쳐내는 파도는 내일을 새로운 빛이라 여기며 일렁이지만, 배고픈 늑대는 내일은 안중에 없이 당장 눈앞에 있는 토끼만이 중요합니다.
이렇듯 각자의 내일은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지칠 법도 한데 하루살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높이 더 높이 올라 하얀 눈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눈송이를 만납니다. 종일 다른 이들의 내일에 대한 생각만 묻고 다니며 하루를 다 써버린 하루살이는 펄펄 쏟아지는 눈송이들 속에서 자유롭게 춤을 춥니다.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의 눈송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있기에 내일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모두 소중합니다.
눈밭 가운에 피어있던 하얀 꽃은 하루살이의 삶의 여행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칭찬합니다. 내일도 없는 네가 하루 종일 내일을 찾아다녔다고 말입니다. 하루살이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흩날리는 눈송이 가운데에 마지막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저 눈송이들 좀 봐,
저마다 다른 춤을 추고 있어.
모두의 내일이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하루살이는 지금 수많은 내일들 사이에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살이가 만난 내일> 中
하루살이의 내일은 아니, 하루살이의 오늘이자 내일의 구실은 자신의 하루를 빌어 서로 다른 수많은 내일을 간직한 이들을 축복해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미소를 지으며 잠든 하루살이의 표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호기심 많고 충실했던 하루살이처럼 더 이상 막연한 내일을 향한 숨바꼭질을 멈추고 오늘과 내일을 열심히 살아가기로 말입니다.
100년 남짓한 우리의 인생. 길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펼쳐보면 사람의 인생도 하루살이의 그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스쳐가는 찰나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찾는 내일은 온 힘을 다해 추는 하루살이의 춤과 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루살이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수고했다, 하루살이야. 그리고 고마워.
<하루살이가 만난 내일>, 글로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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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하루살이가 만난 내일
저자: 글/그림 나현정
발행: 글로연(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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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가 만난 내일>, 글로연 제공
<하루살이가 만난 내일>, 글로연 제공
<하루살이가 만난 내일>, 글로연 제공
나현정 작가의 그림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내 마음의 문진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흰 여백 없이 빼곡히 차인 작가의 컬러는 조화롭고 따뜻합니다. 특히 그림책 <하루살이가 만난 내일>은 그림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배열도 또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주인공 화자 하루살이와 그 외 캐릭터들의 텍스트 색이 다르고, 그림책의 중요 메시지인 '내일'의 색도 따로 주어졌지요.
또 흥미로운 점은 텍스트의 배열입니다. 책 속 어린 새싹이 자신의 내일은 높은 곳에 있다고 했죠? 그 이미지의 흐름에 맞춰 텍스트도 계단처럼 상승하는 배열로 배치됩니다. 반면 시든 꽃의 가라앉는 듯한 내일을 표현할 때는 텍스트의 배열도 하강의 분위기로 배치됩니다. 손으로 찬찬히 짚어가며 낭독하며 읽다 보면 책 속 활자들과 함께 춤추는 듯 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나현정 작가의 전작 <너의 정원>에서 보여준 타이포 디자인이 더욱 무르익은 것 같아 독자로서 참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