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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Jun 26. 2024

매화꽃 핀 선암사에서 만난 목장승

아버지의 발길을 따라


선암사 입구에서 절까지 가는 포장되지 않은 길이 천천히 걷기에 참 좋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길 양옆에 서 있는 한쌍의 붉은색을 칠한 목장승이다,


누가 장난했나 .. 하며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독특한 모습이 왠지 내 눈을 끌었다


승선교는 너무나 아담하고 예뻐 여러 번 건너왔다 갔다 해 보았다.

신선이 내려와 앉아 있을 것 같은  강선루. 계곡물이 바로 내려다 보이게 다리 하나가 계곡에 빠져있다

아버지의 딸인 나는  저 누각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좀 떼어 주면 그 아름다움이 더 돋보일 것이라고  관계자에게 말해 주고 싶다.  


마음속에 불법의 기본 원리를 각인시킨다는 삼인당 연못,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여름 장마철에 큰 물이 오면 일단 여기에 가두었다 계곡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편에  이 연못은 저 섬이 있어 더 커 보인 다고 했다. 


선암사 일주문은 

앞모습도 아름답지만 뒷모습도 아름답다. 

단아한 보물 395호 삼층석탑. 

돌담과  매화가 있는 뒷마당. 

이 절은  요즘 절마다 대대적으로 해대는 증축공사를 하지 않아 더 좋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싸움으로 소송이 걸려 있어 그렇다고 한다.

참 씁쓸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옛 절의 모습을 그대로 만나 아늑함과 조용함을 즐길 수 있었다.   


같이 온 친구가 돌담과 매화를 사진기에 담는다. 


많아도 좋고 

많지 않아도 좋은 선암사 매화다.




선암사에 다녀와 아버지가 쓰신 '벅수와 장승'을 찾아 읽어 보았다.  


 절 산문에 이르기 전 비전을 지나서 승선교의 멋진 홍교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참도 좌우에 목장승 한쌍이 대립하고 있다. 오랜 세월 눈비에 시달려 속은 썩고 겉은 터져서 금이 가고 땅에 닿았던 족부는 썩으면 다시 묻곤 하여 키가 작아졌다.

  필자는 이 앞에서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목공이 한 토막의 나무통을 앞에 놓고 이렇게 멋있는 장승을 착상하였을까? 장승을 세워 놓고 득의에 찬 미소를 띤 목공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흰옷을 입고 선량하고 겸손한 그러나 재주가 있어 보이는 초로의 눈에 피로를 잊은 한때의 미소가 떠올랐을 것이다.'


입은 귀밑까지 크고 상하의 치열이 사납게 보이는데 콧수염이 아래턱을 덮었다.

앞수염은 세 갈래로 구부려 붙였고 뒷수염은 세 갈래로 나누어 파형으로 드리워 배꼽까지 내려왔다.

이 수염은 천하 유일의 멋진 조형이다.. 



이 절의 노승에 의하면 1904년에 만들어져 자신과 동갑이라고 했는데 

다른 자료에 의하면 1924년에 만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견딜지 모르겠으나 썩혀 없애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이제 장승으로서의 근무를 맡을 기력조차 잃었으니 정년퇴직시켜 보호조치를 가하는 것도 무방하겠다. 관계자의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다. (1975년 쓰다)  

1987년 추기,

새로이 장승을 세웠다는 제보로 1987년 11월 확인해 본 바 , 옛 장승을 흉내내기는 하였으나 그 조각솜씨나 들인 공이 그에 미치지 못한 붉은 페인트를 칠한 목장승이 옛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께서 처음에 감동을 받았던 바로 그 장승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듯했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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