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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Oct 14. 2024

외할머니의 참외와 수박

음미하다 1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중국의 진시황제나 로마의 네로황제도 지금의 나보다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제들도 부러워할 맛 호강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어린 날의 소박하고 투박했던 음식이 그립다. 그리움도 맛이라면, 난 매일 그리움을 맛보며 산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먹는걸 참 좋아한다. 우아한 미식가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배부름을 알아채는 뇌의 능력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니, 식탐이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나눠 먹기 싫어, 먹던 음식을 벽장에 숨겨 썩히기까지 하던 욕심쟁이였지만, 이제는 나눠 먹을 줄도 알게 되었고, 음식을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가고 있다. 눈으로 마음으로 해보는 음미도 궁금해지고, 음미에 음미가 더해지다 보니 글로 음미하는 음식 맛도 궁금해졌다. 나의 궁금증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풀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맛을 보러 출발!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두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먼 곳에 살던, 그래서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외할머니를 유난히 좋아했고, 외할머니도 나를 몹시 아껴주셨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주변에서는 우리 둘을 ‘천생연분’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내가 여섯 살이 되던 1980년대 초입 언저리, 외할머니와 살겠다고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고집을 부렸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문득 외할머니와 살고 싶었다. 외할머니께서 나를 살뜰하게 챙기지 못할 것을 너무도 잘 알았던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 않던가? 내 고집이 어머니의 선견지명을 이겼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칠 남매를 키우신 힘겨운 삶 때문이었는지, 성격 탓인지, 외할머니는 손끝 야무진 주부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맛있는 음식을 하거나, 집안을 깔끔하게 단장하는 것에 심하다 싶을 만큼 무심하셨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외할머니와 있는 것이 언제나 행복하고 편안했다.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고 해서, 스물네 시간을 같이 있는 건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자주 일을 하러 가셨고, 외할머니께서 다른 집 농사일을 도와주러 가시면,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지내야 했다. '아동학대’ 피해자로 뉴스에 등장할 법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때는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건 없었다. 외할머니께서 일을 가실 때면, 점심때마다 동네 어른들이 식사를 챙겨주셨고, 오며 가며 내가 잘 있는지 살피셨다. 동네 아이들과 같이 놀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간혹 혼자 있더라도 지루할 틈은 없었다.


 여름 해 질 녘, 집에 돌아오시는 외할머니의 양손은 한 번도 빈 적이 없었다.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품삯으로 받으셨는지, 아니면 상품 가치가 없는 걸 가져오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항상 참외와 수박을 가져오셨다. 외할머니는 저녁을 먹고 나면 대충 자른 참외를 주셨다. 맛있어 보이는 것과 달리, 참외는 무척이나 썼고 식감은 흡사 스펀지를 씹는 것 같았다. 쓰디쓴 참외 맛에 당황하다 보면, 수박이 등장했다. 


수박은 절대로 한 번에 ‘쩍’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지 않았다. 시커멓고 두툼한 부엌칼을 수박 껍질에 대고 흥부가 박을 타듯 여러 차례 그어야 겨우 틈이 생겼다. 그러면 틈 사이에 열 손가락을 다 집어넣고 있는 힘껏 양쪽으로 잡아당겨, 뜯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활활 태워야만, 수박은 ‘뜨드드득’ 소리와 함께 겨우 갈라졌다. 갈라진 수박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빨간 과육은커녕 까만 씨앗도 없었다. 씨앗조차도 하얬다. 참외도 수박도 익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참외와 수박의 설익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독하게 맛이 없는 참외와 수박이었지만 그 순간의 추억만큼은 꿀물보다 달콤하고 맛있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토방에 앉아, 익을 준비조차 되지 않는 참외와 수박을 먹는 것은, 미뢰라는 감각기관보다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또 다른 미각이었다. 


 차마 먹지 못하고 남긴 참외와 수박을 옆에 밀어 두고, 외할머니는 내 머리의 이를 잡아주셨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이를 엄지손톱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우리 똥강아지 머리에서 피 빨아먹은 놈들아”하고 신나게 욕도 해주셨다. 이 잡기가 끝나면, 외할머니는 비닐 비료 포대를 우적우적 접어서 만든 부채로 모기를 쫓아 주셨다. 그럼에도 내 몸은 언제나 모기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가끔 나를 보러 오신 어머니는 국적과 성별의 정체성이 상실된 채, 모기밥이 되어 엉망이 된 내 몰골을 보며, 외할머니를 타박하셨다. 그러고는 언제나처럼 집에 가자며 온갖 달콤한 미끼를 던지셨다. 모든 유혹을 잘 이겨냈지만,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일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외할머니를 혼자 두고 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 때문에 어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듣게 한 것도 미안했다. 


그깟 모기밥이 되면 좀 어떻고, 얼굴 좀 까매지면 어떻다고! 물론 이제는 어머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여전히 나는 외할머니께 미안하고 그때가 그립다. 아무런 조건 없이, 풍족한 사랑을 주신 외할머니와의 일 년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다. 요즘도 간간이 꺼내보는 그때의 추억은, 꺼낼 때마다 초강력 비타민이 되어 나에게 힘을 준다. 


 사랑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마음이 우선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가짜 사랑인데, 우리는 가짜 사랑을 하면서, 그걸 들키지 않으려 자꾸 ‘삐까뻔쩍’ 한 것으로 치장한다.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을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우긴다. 마음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는 거래가 되고 있다. 사랑이 아닌 거래를 하면서 우리는 자꾸 사랑이라고 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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