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하다 4
유난히도 좋아하던 미숫가루를 한가득 싸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선배가, 공항 검색대에서 마약으로 오해받아 한바탕 소동을 겪은 적이 있다. 선배의 경험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미숫가루는 나에게도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줬다.
미숫가루는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이자 음료수였다. 통보리, 콩, 찹쌀을 섞어 어머니께서 직접 방앗간에서 빻아오던 미숫가루의 엄청난 고소함은, 미숫가루 포대에 코를 박고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그랬다면 콧구멍 가득 미숫가루가 가득 차서 기침하느라 한참을 고생했겠지만, 그걸 감수하면서라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고소했다.
미숫가루를 맛있게 먹는 비법은 모두 세 가지였는데, 열에 아홉은 얼음보다 차가운 지하수에 설탕과 미숫가루를 적당히 넣고 섞어서 마시는 걸 즐겼다. 펌프질로 퍼 올린 지하수는 온몸을 얼음장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차가워서, 미숫가루를 단번에 쭈욱 들이키면 머리털이 곤두서는 짜릿함이 있었다. 아주 드물게, 미숫가루에 설탕을 무지막지하게 넣고 물은 찔끔 넣어서 죽처럼 먹기도 했다. 미숫가루의 고소함과 설탕의 단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천국의 맛있었지만, 푹푹 줄어드는 설탕에 눈치가 보여 쉽게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미숫가루에 설탕만 넣고 섞어서 입으로 직행하는 것은 시간도 절약되고, 물이 필요하지 않아 편했다. 하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마른 미숫가루에 목구멍이 막힐 수 있어서 부모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고, 우리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몰래몰래 먹고는 했다.
부모님 모두 논에 가시고, 날씨는 쨍쨍하니 덥기만 하던 어느 날이었다. 남동생이 국그릇 가득 미숫가루를 담고 설탕을 뿌려서 마루로 가져왔다. 마룻바닥에 미숫가루를 질질 흘리며, 숟가락으로 연신 마른 미숫가루를 퍼먹었다. 물에 타서 먹으라고,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차라리 소가 말을 더 잘 알아들을 것 같았다.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남동생이 갑자기 “켁켁켁”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남동생은 입 안 가득 마른 미숫가루를 머금은 채 켁켁거리고 있었다. 미처 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미숫가루는 마룻바닥에 어지럽게 뿌려져 있었다. 남동생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만 비틀어 댔다.
겨우 여덟 살이었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본능적으로 남동생 입 안에 있는 미숫가루를 손으로 긁어냈다. 남동생은 잔뜩 빨개진 눈과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 콧물로 범벅인 채 괴로워했다. 수돗물을 한가득 떠 와서 남동생 입에 부었다.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마룻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더 많았지만, 연신 물을 부어 넣고, 남동생 입에 있는 미숫가루 덩어리들을 끄집어냈다. 내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남동생의 침이 더럽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도 못할 정도로 절박한 시간이었다. 남동생의 등을 두드리고 계속해서 물을 마시게 했다. 시간이 지나자, 남동생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난장판이 된 마룻바닥과 꼬질꼬질해진 남동생을 보니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그러면서도 남동생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남동생이 나를 보며 “언니, 이뻐다.”라고 하며 웃었다. 고맙다는 뜻이었다.
당시 남동생은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여동생이 나를 언니라고 부르니, 그걸 듣고 남동생도 따라서 언니라고 부른 것이었다. 왜 큰누나라고 불러야 하는지, 왜 언니라고 하면 안 되는지, 설명을 하고 또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역시 소귀에 경을 읽는 것이 나았다. 이후로도 남동생은 꽤 오랫동안 나에게는 언니, 여동생에게는 작은누나라고 불렀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다시는 마른 미숫가루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나와 달리, 남동생은 마른 미숫가루를 잘도 먹었다. 오로지 본능만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마른 미숫가루를 여전히 잘도 먹었다. 다행히 그전보다는 조금씩, 천천히 먹기는 했다. 덕분에 더 이상 남동생의 목구멍에서 미숫가루를 끄집어내는 일은 없게 되었다.
나와 남동생은 같은 순간을 경험했지만, 이후 마른 미숫가루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누가 더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경험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조심하게 되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다. 물론 세상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요즘은 그런 경험의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 아니 스스로 그런 기회를 버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한껏 부풀려 놓은 경험과 느낌을 보며 부러워만 하고 있다.
은은한 새벽빛이 화려하게 세상을 깨우고, 윤슬보다 반짝이는 햇살이 풀잎 위 이슬을 비추고, 가느다란 머리칼을 살랑이는 바람이 불고, 타닥타닥 경쾌한 비가 내리고, 앙증맞은 꽃이 피고, 팔랑팔랑 나뭇잎이 흔들거리고, 터질 듯 탐스러운 열매가 익어가고, 촉촉한 물기 머금은 공기의 냄새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이로움이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는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가짜 아름다움을 부러워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보자. 하늘은 맑고, 피부에 닿는 바람이 무척 좋은 날이다. 계절의 변화조차도 스마트폰으로 시간별 온도와 예상 강수량을 통해서 확인하지 말고, 직접 느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