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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Oct 16. 2024

안녕! 나의 우유

음미하다 5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을 기원했던 김구 선생님 못지않게, 일곱 살의 내게도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바로, 학교 가기! 학교에 일찍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외할머니와 이별까지 감행했을 정도로, 학교 가기를 바라고 바랐다. 어머니의 약속이 거짓임을 알고 상심했지만, 그대로 포기하기엔 나의 남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삶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바로 대책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 당시 옆 동네에는 내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살고 계셨는데, 그분께 나의 간절함을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교장 선생님께서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를 지나가실 때마다, 세상 모든 공손을 끌어모아 인사를 했다.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가끔씩 진짜 이마가 땅에 닿기도 했다) 정성 들여 인사를 했다. 평생 해야 할 ‘공손한 인사’는 그때 다 했다 싶을 만큼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하면 교장 선생님께서 특별히 빨리 입학시켜 주실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여덟 살이 되어서야 손수건을 가슴에 달 수 있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입학생이 되면 손수건 위에 이름표를 겹쳐서 겉옷에 달고 다녔었다. 어머니는 콧물이 나오면 그 손수건으로 닦으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흐르는 콧물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언제 옷핀으로 고정된 가슴팍의 손수건을 떼어내서 고상하게 콧물을 닦겠는가? 옷소매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어떤 아이들도 손수건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의 손수건은 신입생을 상징하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학생이 된다는 건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와도 같았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우유 마시기도 그중 하나였다. 우유는 당시 시골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나름의 고급 음료이자 미지의 맛이었다. 우유는 한 달에 한 번씩, 신청을 해야 마실 수 있었는데, 대부분 농사를 짓던 시골에서 매달 일정한 돈을 내야 하는 우유 신청은 경제적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우유 신청만으로도 ‘부잣집’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우리는 ‘부잣집’이 아니었지만, 학부모가 처음이었던 부모님께서는 학교에서 하라는 건 무조건 다 해 주셨다.


 병에 담긴 근사한 우유도, 종이 곽에 담긴 폼 나는 우유도 아닌, 흐물거리는 비닐봉지에 담긴 우유였다. 그럼에도 우유를 처음으로 받던 날, 은근히 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티끌보다 가벼웠던 나의 거만함과 오만함은 바로 깨졌다. 우유를 마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입맛에 우유는 너무 심하게 맛이 없다는 것을. 우유 특유의 비릿함과 달지도 짜지도 않는 그 밍밍함은 진짜 ‘맛없는 맛’이었다. 코를 막고 숨을 참으며 마셔도 소용없었다. 내 몸에 우유를 분해하는 효소가 없었던 건지, 입맛이 촌스러워 우유의 ‘맛있는 맛’을 찾아내지 못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유 마시기는 점점 고역이 되어갔다. 


 우유가 어떤지 묻는 부모님께 맛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해 우유를 신청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시지 못한 우유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서 그 사실을 알게 되셨고, 우유는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우유는 가방에 착실하게 쌓여갔다. 그렇게 쌓인 우유는 봄날의 따뜻함을 견디지 못하고 가방 안에서 터져버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상한 우유에 흠뻑 젖은 교과서와 공책에서는 역겨울 정도의 꼬릿함이 배였다. 부모님께 섭섭하지 않을 만큼 혼이 났지만, 우유 신청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성과도 얻었다. 


 그런데 갈대보다 더 쉽게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내가 그랬다. 우유를 신청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갑자기 우유가 맛있어 보였다. 잘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마셔보고 싶어졌다. 친구들이 먹다 남은 우유라도 한 모금 마셔보고 싶었다. 짝꿍의 호의로 한 모금 얻어먹을 수 있게 되었다. 기대와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우유를 마셨다. 하지만 역시나! 날아든 돌에 유리가 와장창 깨지듯 우유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그렇게 꽤 긴 시간 우유는 나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지금도 그리 즐겨 마시진 않는다. 하지만 마트에 진열된 삼각 커피 우유를 보면, 흐물흐물한 비닐봉지에 담겨있던 흰 우유가 다시 마셔보고 싶어 진다. 이번에는 정말 맛있게 잘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입맛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버렸던 많은 우유와 그 우유를 만드느라 고생했을 젖소들과 목장주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한다. 특히나 젖소들의 노고에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하며 몇 가지를 희망해 본다. 젖소들이 오직 인간이 마실 우유만을 위해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직 인간만을 위한 '우유 생산 기계'로 삶의 전부를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우유의 양이 많아지도록 억지로 많은 약을 먹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내가 마신 우유가 말 못 하는 젖소들의 아픔의 결과가 아니었길 바란다. 앞으로 내가 마실 우유가 젖소들의 괴로움의 결과가 아니기를 바란다. 젖소들이 자연스러운 젖소의 삶을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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