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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Oct 17. 2024

나의 첫 영양제, 원기소!

음미하다 7

 태어날 때부터 병원을 집처럼 드나든 허약한 큰딸을 위해, 부모님은 동생들 몰래 영양제를 사주셨다. 

원기소!


 원기소는 영양을 보충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이 있는, 엄연히 약이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처럼, 원기소는 쓴맛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과자보다 더 새콤달콤하니 맛이 있었다. 세상이 좋아져 좋은 약도 입에 달콤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만든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앉은자리에서 오도독오도독 다 씹어 먹고 싶었지만, 알다시피 약은 하루 복용량이 정해져 있는 법! 하루에 딱 한 알만 먹어야 했다. 


 원기소가 육체건강에 좋다는 건 증명하지 못했지만, 정신건강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원기소 먹을 생각에 하루하루가 생기 넘치고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동생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원기소는 동생들 손이 닿지 않을 높이의 찬장 선반에 놓여 있었다. 오며 가며 찬장 선반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원기소는 확실히 명약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동생들이 없는 틈을 타서 찬장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있어야 할 원기소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원기소는 없었다. 하늘이 ‘쿵’하고 내려앉는다면 그런 기분이었을까? 하늘이 노래지고 가슴은 쿵쾅쿵쾅 마구마구 뛰고, 나이아가라 폭포수마냥 눈물을 가득 머금은 내 앞에, 남동생이 나타났다. 이미 텅텅 비어버린 원기소 병을 손에 든 채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 듯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용케도 원기소를 손에 넣은 남동생이, 동네 아이들을 다 불러 모아 원기소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남은 건 본인이 몽땅 먹어버렸다고 했다. 동생들 몰래 혼자만 영양제를 먹는다는 미안함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저 눈물만 났다.  


 하루에 딱 한 알만 먹어야 한다는 원기소를, 한 번에 수십 알을 씹어먹은 남동생은 멀쩡했다. 원기소의 과잉 복용은 남동생의 몸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기분만 매우 좋게 했을 뿐이었다. 그 일 이후로, 우리 집에서는 어떤 영양제도 볼 수 없었다. 나의 첫 영양제인 원기소는 그렇게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다시는 어떤 영양제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자꾸 영양제가 내 인생에 끼어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피곤해 보이면 주변에서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이구동성으로 한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나이를 먹을수록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라는 소리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나이를 먹는 것으로도, 이미 배가 부른데, 영양제까지 먹으라니. 가혹하다. 


 피를 맑게 해 주고, 뼈를 튼튼하게 해 주고, 관절을 부드럽게 해 주고, 호흡기를 튼튼하게 하고, 눈을 보호하고, 노화를 방지하고, 살을 빼주고, 그 많은 것을 해독하느라 지쳐있을 간을 위해서 다시 약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연한 듯 들려온다. 콩트의 대본도 아닌데, 심하게 웃긴다. 


 햇빛을 보며 조금이라도 걷고, 나이 듦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술과 담배와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남들과 비교하는 쓸데없는 일만 하지 않아도, 지금보다는 충분히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힘든 방법은 인기가 없다. 조금 더 쉬운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재빠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보조식품과 영양제를 먹고 또 먹는다. 배가 부를 정도로 먹는다. 크릴새우, 그린 프로폴리스, 노니, 보스웰리아, 모링가 등등. 옛날부터 내려온 신비의 명약인 듯, ‘세계 슈퍼푸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나타난다. 하나 같이 ‘신이 내린 음식’이라고 한다. 왜 아직도 먹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냐며 질책하는 것 같다. 이름도 생소한 '신이 내린 슈퍼푸드'는 자꾸자꾸 새롭게 등장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신이 내린 슈퍼푸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슈퍼푸드가 등장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극소량만 있어서 너무 귀하다는 그것들이, 내 평생 가볼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 않을 정도로 멀고 먼 남극이며 열대 밀림에서 온 그것들이, 한 달에 겨우 삼사만 원이면 살 수 있다. 바다며 산을 파헤치고, 다른 생명들의 먹이까지 빼앗아서 만든 영양제를 먹고 우리는 과연 얼마나 건강해졌을까? 그런 식으로 건강해져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 우유가 배달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건강해지기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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