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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Oct 18. 2024

회관 집 할머니와 함께한 저녁밥

음미하다 9

 신나게 놀다가도 우리 집 부엌 굴뚝에서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서서히 집에 갈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밥 먹자.”라는 어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에 도착하자마자 온 힘을 다해 집으로 뛰었다. 

시골 반찬은 항상 거기서 거기였다. 김치와 나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신나게 놀다 먹는 밥은 그야말로 ‘시장이 반찬’이었다. 꿀맛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다섯 식구 저녁 밥상에 수저 한 벌이 더 올라오기 시작했다. ‘회관 집 할머니’를 위한 수저였다. 


 동네 가운데에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마을회관이 있었다. 마을회관에는 아주 작은 방과 부엌이 딸린 집이 있었다. 사실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창고 같은 곳이었다. 남동생이 태어날 때쯤 우리도 잠시 그곳에서 살았었다. 


 우리가 새집을 지어 이사를 하자, 어느 곳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새롭게 그곳에 터를 잡으셨고, 우리들은 회관 집에 사신다는 이유로 그 할머니를 ‘회관 집 할머니’라고 불렀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이 작고 가냘프고, 성격이 무척이나 예민하시고 퉁명스러우셨다. 가냘픈 체구와 예민한 성격은 할머니의 상징처럼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울리기도 했다. 문득문득 ‘동화책 속에서 보던 마녀 할머니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팍스럽기도 해서, 피해 다닌 적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회관 집 할머니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저녁을 먹으려고만 하면, 우리 집에 나타나셨다. ‘진짜 마녀처럼 우리 집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정확하게 밥때만 되면 우리 집에 오셨다. 


 밥때가 되어서 우리 집에 온 사람을 어머니는 지금이나 예나 그냥 보내시는 법이 없었다. 미처 회관 집 할머니가 우리 저녁 시간에 오시지 않으면, 내가 할머니를 모시러 가야 했다. 나에게 심부름까지 하게 만든 회관 집 할머니는 역시 마녀가 틀림없었다. 좋아할 수가 없었다. 회관 집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의 주인처럼 행동하시는 건 당연했고, 때로는 어머니의 반찬 맛을 타박하면서 흉을 보기도 하셨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회관 집 할머니의 투정을 받아주셨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연하게 밥을 먹고, 내가 해본 적 없는 반찬 투정을 하시는 모습이 진짜 싫었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미웠다. 마녀가 틀림없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도 괴로울 지경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엄하시면서 회관 집 할머니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하게 대하는 어머니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미웠던 회관 집 할머니였는데, 밥을 먹는 횟수가 늘면서, 회관 집 할머니의 투정이나 짜증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회관 집 할머니를 사랑하는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했고, 우리가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회관 집 할머니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이사를 하고, 한참 뒤에 회관 집 할머니가 혼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비록 좋아하진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외로웠던 회관 집 할머니에게 미안해졌다. 


 이후 어른이 될 때까지 내가 회관 집 할머니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미워한 이유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사시는 ‘불쌍한’ 할머니한테 내가 너무 못되게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그 할머니가 왜 그렇게 밉고 싫었을까? 


 어쩌면 회관 집 할머니가 감사하다는 말 대신 너무나 당당하고 당연하게 우리 집 밥상에 함께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시절의 나는 회관 집 할머니가 어머니의 호의에 감사함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길 바랐던 것 같다.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처럼 나도 어쩌면 회관 집 할머니에게 ‘불쌍한 수혜자다움’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런데 회관 집 할머니가 너무 당당하게 밥을 먹고, 감사하다는 말조차 없어서 화가 난 것 같았다. 너무 어려서 철이 없었다는 면죄부를 내밀어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지만, 감춰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진정한 나눔을 내가 망가뜨렸다는 것만 확인하게 된다. 


 내가 감히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규정짓고, ‘불쌍함’을 강요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들의 기준으로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온정을 베풀고 도와주려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불쾌해진다. 내가 누군가의 ‘불쌍하고 가여운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없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고, 도움을 주어야 할 때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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