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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Oct 17. 2024

동글동글 하얀 솜사탕

음미하다 8

   인생 첫 소풍을 위한 여정에는 뜻밖에도 많은 돈이 필요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소풍 가방’에 ‘맛있는 간식’을 많이 가져오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말씀을 법’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부모님께 당장 ‘소풍 가방’과 ‘맛있는 간식’을 사달라고 졸랐다. 맛있는 간식이야 우리가 가게를 하고 있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소풍 가방’은 시장에 가서 빨리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별 뜻 없이 하신 말씀을, 나는 진짜 '소풍 가방'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줄 알았고, 정체도 불분명한 소풍 가방을 사야 한다고 떼를 썼다.

“엄마, 소풍 갈 때 소풍 가방 필요해. 소풍 가방 사줘.”

“소풍 가방?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책가방에 가져가면 되지.”  


 진리와도 같았던 선생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부엌일을 하는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가게를 보는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논일하는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소풍 가방을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떼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선생님 말씀을 따르지 못했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만 솟아날 구멍은 반드시 생기는 법이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그래. 우리 큰딸 소풍 가방 사자. 얼마냐? 아빠랑 가자.”

“잘한다. 몇 쪼금이나 쓴다고 가방을 사. 그리고 누가 소풍 간다고 가방을 따로 사냐? 응? 딸이나 아버지나······. 어이구.”

고난은 있었지만, 결국 앞주머니가 두 개 있는 새빨간 소풍 가방을 손에 넣게 되었다. 역시 난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였다. 


 소풍이라고 해봐야 전교생이 학교 근처 저수지에 걸어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소풍 가방’ 안에 든 ‘맛있는 간식’을 동생들 없이 혼자 먹을 생각에 행복했다. ‘소풍 가방’ 안에는 어머니가 챙겨주신 빵, 과자, 사과, 사이다, 찐 달걀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학교까지 데려다주시면서 내 손에 천 원을 건네주셨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삼사백 원을 할 때니, 내 손에 쥐어진 천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소풍 가방에 터질 듯 넘쳐나는 간식과, 아버지께서 주신 비밀자금 천 원은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도무지 발이 땅에 닿지 않고, 하늘로 붕붕 떠올랐다. 

“아빠, 나 이걸로 다 사 먹어도 돼?”

“그럼, 소풍 가서 사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어.”     


 소풍 장소인 옆 마을 저수지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장난감, 풍선, 사탕과 여러 가지 과자를 파는 사람들이 이미 잔칫날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번에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새하얀 솜사탕이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그 솜사탕이 내 앞에 실물로 등장을 한 것이었다. 보물 찾기며, 장기 자랑 같은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솜사탕뿐이었다. 


 아버지가 주신 비밀자금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사용했다. “솜사탕 하나 주세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저씨가 커다란 통 안에 나무젓가락을 집어넣고 빙빙 돌리니, 하얗고 가느다란 실이 통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와 나무젓가락에 들러붙었다. 아저씨가 나무젓가락을 돌리면 돌릴수록 솜사탕은 더욱 커지고 더욱 동그랗게 되었고, 내 입은 흥분과 기대감에 블랙홀처럼 점점 벌어져갔다. 


 손수건에서 비둘기가 나타나는 마술보다, 사람 몸이 분리되는 마술보다 더 신기한 마술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입 베어 문 솜사탕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순식간에 녹아버려 아무런 식감도 없이 달콤하기만 것이 있다니. 베어 먹은 자리를 따라 동글동글 설탕 방울이 맺혀가며, 나의 첫 솜사탕은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하지만 걱정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돈은 넘칠 만큼 있었다. ‘얼마면 되니?’라는 드라마 대사를 나는 이미 그때 외치고 있었다. 


 몇 개를 먹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저 저수지에 오로지 솜사탕 아저씨와 나만 있다고 느꼈던 시간이 꽤 오랫동안 흘렀다는 것만 기억한다. 솜사탕의 나무 막대를 뽑아버리고 손으로 꾹꾹 눌러서, 공 모양으로, 주사위 모양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을 터득할 정도로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입에서 피어나는 단내에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빙글거리고 토할 정도로 솜사탕만 먹었다. 친구들이 보물 찾기와 장기 자랑을 열심히 해서 공책과 연필 같은 선물을 탈 때도, 오로지 솜사탕에만 탐닉했던 나는 ‘빈 소풍 가방’만 남긴 채 소풍을 마무리했다. 


 소풍을 잘 다녀왔는지 묻는 어머니께 굳이 필요 없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엄마, 아빠가 아침에 천 원 안 줬어.”


 질릴 만큼 먹은 솜사탕 덕분인지, 지금은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천 원을 탕진한 경험을 값지게 받아들였는지, 지금은 돈을 아껴 쓴다. 식탐이 무섭도록 강하다는 걸 알았는지, 지금은 나누어 먹기 위해 노력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 다행이다. 나는 적어도 그 순간의 내 모습은 충분히 성찰했다.

 

 참! 

소풍날, 나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책가방을 메고 왔고, 나의 새빨간 '소풍 가방'은 심하다 싶을 만큼 튀었다. 그날 이후로 난 그 가방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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