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하다 10
여름철 최고의 간식이 미숫가루였다면, 사시사철 일 년 열두 달 내내, 우리에게 사랑받은 간식은 누룽지, 아니 깐밥이었다. 미숫가루가 여름 잠깐의 베스트셀러였다면, 깐밥은 사계절 내내 스테디셀러였다. 가마솥 밥을 하면 항상 만들어지는 깐밥은 극강의 고소함과 바삭거림, 거기에다 탄수화물의 오묘한 달콤함까지 어우러져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고, 특히나 남동생에게 깐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천둥의 신 토르의 손에 항상 천하무적 망치가 있듯, 남동생의 손에는 항상 설탕 듬뿍 뿌린 깐밥이 있었다.
가마솥 깐밥이 너무 그리워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도대체 그 맛을 재현할 수 없다. 말까지 하는 무서울 정도로 똑똑한 압력밥솥도 ‘바삭 고소 달콤한 깐밥’은 무리인 듯하다. 똑똑한 압력밥솥이 만든 깐밥은 너무 두껍고 눅눅하다. 나의 이런 안타까움을 알았는지, 깐밥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곳이 많아졌다. 현미나 귀리, 콩 같은 다양한 곡물까지 넣어서 맛과 건강까지 챙길 수 있도록 잘 만들어졌다. 마치 과자처럼 고소하고 맛있다. 사실은 과자보다 더 맛있다. 그래서 속상하다. 난 ‘누룽지 과자’가 아닌 깐밥이 먹고 싶기 때문이다.
시골 우리 집은 초등학교 가는 길목에 있는 가겟집이었다. 그래서 이웃 동네의 모든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길에 반드시 우리 집을 거쳤다. 학용품, 콩과자, 맘마밀, 아폴로, 쫀드기, 바람패, 인형 놀이, 구슬 등을 사고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학생들로 우리 집은 매일 아침 북새통이었다.
그런 정신없는 틈을 타고 사건이 발생했다. 가게 물건을 훔쳐 가는 일은 다반사였으니 그건 사건 축에도 들지 못했다. 사건의 핵심 용의자는 바로 우리 남동생이었다. 맞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등장한 바로 그 남동생이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등장할 바로 그 남동생이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남동생에게,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꺼번에 사라지는 시간은, 물총을 마음껏 발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남동생은 한 손에는 수돗물 가득 장전한 물총을, 다른 한 손에는 설탕 듬뿍 뿌린 깐밥을 들고, 파란 대문 뒤에 숨어서 학생들이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혼자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서러움을 그렇게 표현한 건지, 고약한 놀부 심보가 발동된 건지 동생은 무차별로 물총을 발사하고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학교 가는 길에 때아닌 물벼락을 맞은 학생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남동생을 잡아서 복수를 하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부모님께 한참을 혼나고, 피해를 당한 형들과 누나들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나서야, 남동생의 물총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날 이후 물총은 우리 집에서 자취를 감췄다. 원기소가 사라지듯 물총도 그렇게 사라졌다.
그럼에도 설탕을 뿌린 깐밥은 여전히 우리 집, 특히 남동생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인류에게 필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식량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남동생은 ‘뽀뽀뽀’를 보면서도, 친구들과 놀면서도, 누렁이와 놀면서도 깐밥을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물총 사건으로 부모님께 혼나던 순간에도 남동생의 조그만 손에는 깐밥이 꼭 쥐어져 있었다. 때가 꼬질꼬질 묻은 조그만 손에 들려진, 설탕이 솔솔 뿌려진 깐밥을 조물락조물락 거리며 남동생은 부모님의 엄한 훈계를 이겨냈다. 역시나 설탕이 뿌려진 깐밥은 남동생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매일매일 밥을 실컷 먹고, 설탕까지 뿌린 깐밥을 먹고 먹고 또 먹었던 남동생이었지만, 결코 ‘뚱보’는 되지 않았다. 놀라울 수 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탄수화물로는 남동생을 비만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남동생뿐 아니라, 우리 동네나 학교에서도 뚱뚱한 사람은 없었다. 조금 통통한 정도의 사람(그게 바로 나다.)이 간혹 있었을 뿐이었다.
외모도 경쟁력이 되는 세상을 살다 보니 요즘 사람들은 뚱뚱해지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먹는 양보다 움직이는 양을 조금 더 많이 하면 되는 간단한 원리는,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대신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아예 안 먹거나, 먹고 토한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라는 동요처럼 동네를 돌아보자. 한 바퀴가 부족하면 두 바퀴를 돌아보자.
아니면 세 바퀴? 살이 찔 새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