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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고구마

음미하다. 26

by 오늘나 Feb 20. 2025

    촉촉함이 꿀처럼 흘러내리는 물고구마보다는, 쏟아지는 짱짱한 햇빛에 바싹 말려낸 이불처럼 포슬포슬한 밤고구마를 좋아했다.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이웃들이 챙겨준 고구마는 겨울 내내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했다. 생고구마보다는 찐 고구마가, 찐 고구마보다는 군고구마가 훨씬 맛있었고 먹는 재미도 좋았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밥을 하고 남겨진 아궁이의 은은한 군불에 고구마를 묻었다가 꺼내 오셨다. 이미 밥을 먹었음에도, 김치와 함께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과 함께 두세 개씩은 거뜬히 먹었다. 손과 얼굴, 옷에 검댕을 묻혀가며 먹다 보면, 집 근처 작은 소나무 숲의 거친 바람도, 칠흑같이 검은 밤의 무서움도 잊히게 마련이었다. 


가끔은 어머니 대신 내 손에 고구마가 들렸다. 부지깽이로 군불을 헤집어 고구마를 던져놓고, 다시 부지깽이로 군불을 끌어모아 고구마 위를 덮었다. 밥을 다 먹고 아궁이에서 꺼내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밥만 먹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겼다. 분명 아궁이에 고구마를 넣으면서 ‘밥 먹고 바로 꺼내야지’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잊지 말자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고구마의 존재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매번 그랬다. 만화영화 때문이었다. 그때는 원하는 방송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마법의 시기가 아니었다. 정해진 요일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것만 볼 수 있었다. 밖에서 놀다가도 방송이 시작되는 오후 5시 30분이 가까워지면 모두들 집을 향해 뛰었다. ‘개구쟁이 스머프’, ‘빨간 머리 앤’처럼 재밌는 만화영화가 요일별로 방송됐다. 한편 한편이 너무 소중했기에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면, 만화영화에 빼앗긴 정신은 웬만해서는 제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늘 아궁이에 넣어둔 고구마를 잊은 것이다. 


밥 먹고, 아랫목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부리나케 아궁이로 달려가면, 고구마는 이미 새까만 숯덩어리로 변해버린 뒤였다. 하지만 내가 만든 까만 고구마는 여동생에 비하면 애교였다. 온종일 운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심하게 울던 여동생은, 신기하게도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거의 울지 않았다. 평생에 걸쳐 조금씩 나눠 흘려야 할 눈물을, 한 번에 다 쏟아버려 부족해졌는지 거의 울지 않았다. 여동생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울지 않았다. 


대부분 벼농사를 짓던 우리 동네에서 추수하고 남은 볏단은 큰 재산이었다. 창고나 마당 한편에 높이 쌓아두고 소쿠리나 멍석같이 집에서 필요한 것을 만들기도 했고,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이야기였고, 우리에게는 그저 신나는 놀잇감일 뿐이었다. 쌓아놓은 볏단을 높은 산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어오르기도 했고, 볏단을 끌어내려 인디언 오두막처럼 만들고 그 안에서 놀기도 했다. 당연히 혼이 났지만,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반복했다. 볏단이 주는 아늑함은 어른들의 꾸중을 이겨내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 매력이면 충분했기에, 어느 누구도 그 거대한 볏단 더미 밑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을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내 여동생과 친구들 서너 명이 해내고 말았다. 


하필 마을에서도 가장 어렵게 살던 한 아이의 집에 모인 여동생과 친구들은, 볏단에서 지푸라기를 끄집어내 그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았다. 지푸라기에 불을 붙이면, 군고구마가 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아직 여덟아홉 살 정도라, 아무도 성냥을 못 켠다는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도전정신 강한 여동생이 끝내 성냥을 켜버렸다. 여동생이 붙인 지푸라기의 불은 고구마가 아니라, 순식간에 높디높은 볏단으로 옮겨 붙었고, 그야말로 활활 타버렸다. 집으로 옮겨 붙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일 뿐이었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 더니 고구마 구우려다 소중한 집을 태울뻔했다. 


아이들은 작은 불씨가 큰 불로 번지자,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갔고, 동네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정작 성냥을 켜서 불이 붙게 한 여동생은, 어떤 동요도 흔들림도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사건 현장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아주머니의 증언으로 여동생은 순식간에 ‘독하디 독한 가시내’가 되었고, 여동생은 지금도 무척이나 억울해한다. 본인은 그저 친구들을 위해 성냥을 켰을 뿐이고, 울지도 못할 만큼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고 한다. 사랑하는 막내딸 덕분에 아버지는 볏짚이 다 타버린 집에 거액을 물어 주었다. 


여동생이 군고구마를 생각하며 성냥을 그었던 그 순간, 볏단을 홀랑 태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한번 그은 성냥에 엄청난 돈을 물어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한 번의 일로 ‘독하디 독한 가시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라도, 그 시작은 무시할 만큼 시시하고, 사소해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도 시시하고 사소한 것은 없다. 별것 아니라는 착각만 있을 뿐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신중함을 듬뿍 담으려 애쓰는 이유다. 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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