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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꾸라지는 어디로 갔을까?

세상 맛깔나다. 겨울 7

by 오늘나

우리 집 장난감 중 태생부터 장난감이었던 것은 극히 드물었다. 대신 생활용품, 주방용품, 농기구가 경계 없이 장난감 자리를 차지했고, 하다하다 삽도 장난감이 되었다. 겨울이 되면 우리 삼 남매는 종종 삽 한 자루씩 들고 집을 나섰다. 삽을 들고 집을 나서는 것을 모험이라고 생각했고, 그 모험지는 언제나 집 뒤편의 논이었다. 비록 우리 논은 아니었지만 집 주변의 모든 논은 우리들의 겨울 놀이터였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서 질퍽해진 논바닥에 빠져버린 발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난관을 만났지만 즐겁기만 했다.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신났다. 하지만 우리 모험의 진짜 목적인 미꾸라지 잡기를 잊은 적은 없었다.


겨울 논바닥에는 빨대 크기의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었고 그곳을 파면 미꾸라지가 있었다. 우리는 그 미꾸라지를 잡겠다는 큰 꿈을 갖고 원정대를 꾸렸던 것이다. 하지만 축축하고 군데군데 얼어있는 무거운 흙을 삽으로 파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저 논바닥을 휘적휘적 흩트리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삽으로 논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찔러보고, 결국 손까지 동원하며 논바닥을 헤집는 것은, 질리지 않는 최고의 촉감놀이자 운동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씨름해도 우리 손에 잡힐 정도로 어리석고, 운 나쁜 미꾸라지는 없었다. 간혹 부모님 말을 안 듣고 논바닥에 올라온 청개구리 같은 미꾸라지를 발견하는 행운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그림의 떡이었다. 미꾸라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너무나 미끄러워서 번번이 우리 손을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미꾸라지 잡기를 아홉 살이던 남동생이 딱 한 번 성공한 적이 있었다. 사실은 주워 왔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논바닥을 기어 다니는 미꾸라지를 용케도 손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빈 막걸리 병에 미꾸라지를 넣어와서는 기세등등하게 자랑했다. 크기는 몹시 작았지만 미꾸라지는 미꾸라지였다. 남동생은 명색이 물고기인 미꾸라지를 위해 물을 담은 막걸리병에 거처를 정해주고는, 또 다른 놀이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실컷 놀고 온 남동생이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막걸리병도 물도 그대로인데 미꾸라지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온 가족이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혹시 남동생에게 잡혀 온 미꾸라지가 왕자나 공주였을까? 그래서 미꾸라지 왕국의 군대가 구출 작전을 펼친 것일까? 아니면 미꾸라지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용이 드디어 때가 되어 승천이라도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외계인에 의한 납치? 지금도 우리 가족에게 그 미꾸라지의 행방은 풀고 싶은 숙제다. 크게 상심한 남동생은 왼쪽 눈은 꼭 감고, 오른쪽 눈은 크게 떠서 막걸리병 입구에 대고는 이리저리 병 안을 살펴봤다. 투명한 플라스틱이라 굳이 그런 정성 가득한 관찰이 아니어도 미꾸라지의 부재는 알 수 있었지만, 남동생은 한동안 병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잡은 미꾸라지에 대한 미련이었던 것이다.


어설픈 우리 손을 피한 미꾸라지였지만 경험 많은 아버지 손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미꾸라지는 언제나 내 차지가 되었다. 비실비실 약해빠진 나의 약이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미꾸라지와 갖가지 약재를 섞어서 정성껏 보양식을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가 해준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맛이 없었다.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애꿎은 등짝만 고통을 받았다.


우리들의 장난감 삽은 논에서의 활약만큼이나 화장실을 개척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가장 힘든 건 고약한 냄새가 아니었다. 냄새는 코 막고 숨 좀 참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진짜 힘든 건 음산한 목소리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를 속삭이며 뒤처리 도우미를 자처한다는 귀신의 출현이었다. 본 적은 없었지만 상상만으로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일이었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밤이었다. 일 년에 서너 번이긴 했지만 왜 하필 밤에 그것도 밤 12시쯤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냔 말이다. 꽃밭을 지나 닭장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로 향하던 나의 인기척에 닭장에서 잠을 자던 닭이 ‘꼬꼬댁’하며 화들짝 놀랐고, 나는 더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된 몸과 마음이 닭의 울음소리에 더욱 경직되었고, 결국 나의 발길은 꽃밭으로 향했다. 거름을 준다는 거룩한 심정으로 달빛 아래 큰일을 보고 삽으로 흙을 떠서 덮었다. 삽은 그렇게 나의 부끄러움을 감춰주었다. 내 노력 덕이었는지 우리 꽃밭의 그 많은 꽃과 앵두나무, 포리똥 나무는 유난히 잘도 자랐다. 내가 화장실과 꽃밭에 쟁여놓은 그 덩어리들은 숙성과 발효의 긴 시간 동안 귀한 대접을 받으며 여기저기 좋은 거름이 되었다. 비록 화장실 안에서 냄새는 났지만 덕분에 우리 채소와 과일과 꽃은 튼튼하고 맛있고 예쁘게 자랐다.


요즘 내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하얀 수세식 변기에 배설한 그 덩어리들은 귀한 대접은커녕, 우리 눈이 닿지 않는 어딘가로 끌려가서 더럽다고 타박을 받고 있다. 그러고는 많은 물과 온갖 약품으로 억지 단장을 한다. 풍요로운 순환의 삶을 살던 내 똥이 이제는 구박덩어리가 된 채 변기 손잡이의 힘에 이끌려, 변기통의 물을 따라 멀리멀리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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