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하다. 25
이번 겨울은 첫눈부터 폭설로 시작하더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이 오면 번거롭고 불편해지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죄송함을 전한다. 나이 먹기와 철들기가 속도를 못 맞춘 탓에, 지금도 눈만 오면 좋다. 하지만 기설제를 지낼 정도로 사리 분별을 못하는 것은 아니며, 출퇴근 시간에는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길 바란다.
눈을 좋아하는 나에게, 겨우내 하얀 눈이 듬뿍 내렸던 어릴 적 우리 동네는 천국이었다. 마을 전체가 하얀 눈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은, 그림보다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예쁜 눈송이를 유리잔에 가득 담아, 햇살 좋은 작은방 창문가에 올려두고, 넋을 놓고 보기도 했다. 성격 급한 눈송이는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놀란 나는 물만 조금 남은 컵을 들고 ‘누가 눈 버렸어?’라며 범인을 찾아 나섰다가, 문득 ‘아, 녹았구나!’를 깨달으며 민망해했다.
따뜻해지면 눈이 녹는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었고, 학교에서도 분명히 배웠다. 그런데 난 가끔씩 지식을 글자로만 받아들이는 답답한 학생이었다. 순진무구했다거나 융통성이 아주 살짝 부족했다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으나, 포장이 어려울 듯하다. 아둔해서 그랬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랬다. 나는 아둔했다. 그나마 과거형이었음에 안도하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눈 못지않게, 고드름이 주는 재미도 컸다. 햇빛만 만나면 맥을 못 추고 사라지는 눈과 달리, 시간을 갖고 햇빛과 줄다리를 했던 고드름은 시각과 미각을 모두 만족시켰다. 그 시절 나의 고드름은 반짝반짝 윤이 나면서 투명하고 맑고 깨끗했다. 그래서 따 먹었다. 사과를 따 먹듯, 감을 따 먹듯,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고드름을 따 먹었다. 말 그대로 유기농 천연 얼음과자였다. 있는 힘껏 밟아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아무리 애를 써도 뭉쳐지지 않는 눈이 오는 날의 고드름은, 모양도 사납고 자그마하니 맛도 별로였다. 하지만 살짝만 눌러도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 손가락 끝으로 조금만 긁어모아도 잘 뭉쳐지는 눈이 올 때의 고드름은, 모양도 예쁘고 큼지막하니 맛도 좋았다.
밤새 수분 가득 머금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햇살이 따뜻해진 오후 2시경이 되면,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 고드름에서 동글동글 물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바로 그때가 고드름이 제일 맛있는 순간이었다. 맨손으로 고드름을 ‘뚝’ 따서,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기도 하고, 날름날름 핥아먹기도 하고, 야금야금 깨물어 먹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고드름마다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었다. 뭉근하게 달큰한 것도 있었고, 물비린내가 살짝 느껴질 정도로 밍밍한 것도 있었다. 가끔씩 손이나 혀에 붙어버려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고드름은 언제나 재밌고 맛있는 간식이었다.
평소처럼 고드름을 즐기던 어느 날, 어린아이가 사과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한 편의 삽화가 내 마음에 쏙 들어와 버렸다. 눈치채셨겠지만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열 살 아이에게는 손을 대지 않고 사과를 따 먹는, 가장 재밌는 방법으로만 보였다. 앞선 글 20화 ‘수리수리 마하수리! 더 맛있어져라!’에서도 밝혔듯이, 어릴 적 나는 책 따라쟁이였다. 따라쟁이가 아니라도, 그토록 흥미로운 장면을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앙증맞은 크기의 고드름 밑에 자리를 잡고, 있는 힘껏 고개를 뒤로 젖혔다. 최대한 크게 입을 벌렸다. 따뜻한 햇살에 조금씩 녹아내린 고드름에서 한 방울씩 물이 떨어졌다. 목젖으로 직행하는 얼음장 같은 물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짜릿함이 느껴졌다. 모든 게 좋았다. 따뜻함과 중력을 이기지 못한 고드름이 내 입속으로 가차 없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정말 모든 것이 좋았다. 고드름이 이와 혀 사이의 여리고 여린 살에 안착해 버렸다. 거긴 고드름이 있을 곳이 아닌데 말이다. 역시 뭐든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후의 상황은 ‘시뻘겋다’와 ‘처참하다’라는 표현이면 충분하다. 고드름이 작아서 망정이었지, 평소에 따먹던 큰 고드름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고드름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는 허망한 이야기의 우둔한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만유인력의 법칙은 제대로 배웠다. 지식을 생활과 연결하지 못하던 나에게 이보다 처절하면서도 완벽한 배움은 없었다.
중력의 무서움을 배운 이후에는 절대 고드름 밑에 가서 입을 벌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싱싱한 고드름을 따 먹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따 먹을 고드름이 없다. 기름때와 공해 가득 머금은 고드름을 먹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이, 먹을 수 있던 고드름을 없애더니, 기어이 다음 세대에게서 고드름의 존재조차 빼앗으려 하고 있다. 지구에 세를 살고 있는 인간들이, 세를 내기는커녕 점점 집을 망가뜨리고 있다. 닥치는 대로 사고, 버리고, 파헤치며 복구 불가능 상태로 만들고 있다. 지구가 인간들에게 내밀 손해배상 청구서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럴까! 엉망진창으로 만든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별을 정복하는 것이 과연 해결책일까? 있는 지구나 잘 썼다가 돌려주자. 둘리처럼 말이다.
참, ‘고드름 낙하 주의’라는 경고문이 보이거든, 무조건 피하시라. 떨어지는 고드름에 장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