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곁에 있는 것에 무감각하다. 너무도 당연해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했던 책은 파울루 코엘류(Paulo Coelho)의 유명한 소설, 『연금술사』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방황했던 산티아고가 마침내 깨달은 것은 보물은 바로 자신의 주변에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내게도 그런 영감을 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주로 여름에 휴가를 가곤 했다. 아내의 직업이 특수 교육과 관련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한산하고 쾌적한 계절에는 못 가고 성수기에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아이들까지 모두 네 명이 여행을 갈 때면, 내가 신앙처럼 지켰던 것 중 하나가 여행 계획표 작성이었다.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빠짐없이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은 은근 나의 자부심이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표정을 지은 적도 있었다. 휴가를 가는 날부터, 계획했던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맞추느라, 여행이기보다 고도의 작전을 방불케 했던 적도 많았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들이 여행에 동행하지 않기 시작했고, 특히 여름휴가는 몇 해 전부터 부부만의 단출한 여행이 되었다. 그러자마자 나는 보란 듯이 바로 그 계획 세우기를 그만두었다. 그해 여름 나와 아내는 크게 음악을 들으며, 창밖으로 손을 한껏 길게 벌리고, 렌터카로 해안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서두를 필요도 없이 차를 몰다 피곤하면 잠깐 내려 검은 해안가를 거닐곤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맛집 검색은 아내에게 미루고, 나는 그저 멍을 때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어느 해변 카페의 썬 베드에 누워 바다를 조망하며 책을 읽기도 했는데,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제대로 휴식한다는 느낌을 줘서 너무 만족했었다. 앞선 몇 해 동안의 여행보다, 진정으로 힐링한 느낌이었다.
내가 집착하던 여행 계획 세우기를 그만둔 계기가 된 것은 3년 전의 일 때문이다. 여름 제주도의 날씨가 대부분 그러하듯,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저녁나절부터는 먹구름이 몰려왔던 밤으로 기억된다. 특히나 사흘 전 태풍이 한차례 지나간 뒤라서 온통 습하고 푹푹 찌는 밤공기는 짜증 제조기였다. 마침 우리 부부는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 해수욕장 해변을 걷고 있었다. 습하고 더운 날씨는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날씨인데 걱정스러웠다. 여기서 그대로 있다간, 어부인 님으로부터 치도곤(?)을 당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고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좀 아쉬운 밤이었기에,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좋은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책에서 읽었던 얄팍한 과학 지식이 떠올랐다. 대기권의 최하층 대류권에서는 1,000미터 고도가 상승될 때마다 약 6도 정도 온도가 내려간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가능한 한 높은 곳에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1100 고지 휴게소였다.
1100 고지는 제주도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해발 1,100미터 고지에 위치한 휴게소다. 제주에서 서귀포로 가는 길목에 존재해 주로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인 곳인데, 그곳을 낮이 아닌 한밤에 올라가 보는 일은 그 자체로 신나는 일이었다. 막상 고지로 향하는 산복 도로에 들어서니 앞서가거나,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량도 없었다. 한적하기를 지나쳐 괴기스러운 분위기였다.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는데 며칠 전 태풍 때문인지 길에 잔가지들이 꺾여 널려 있어서 나는 조심조심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멀리서 뭔가 광채가 번쩍였다. 하나가 아니고 6개가 반짝반짝했다.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차의 속도를 줄인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도로를 점령한 고라니 가족들이었다. 녀석들은 인적이 드문 깊은 밤에 자기들 나름의 산책을 나온 것인데, 과감히 숲을 벗어나 도로 한가운데를 점령했던 거였다. 그토록 제주도를 여러 번 왔지만 도로 한복판에서 고라니를 만나다니, 아내의 짜증은 어느새 환호로 바뀌었고, 웬 횡재냐 하면서 연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100 고지 휴게소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역시 해변보다 온도가 약 7도 낮았지만 사방이 암흑이었다. 조명 하나 없는 주차장 주변을 서서히 살펴보니, 희멀건한 피사체가 여럿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은 아예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있었다. 저들도 더위와 습기를 피해 왔겠거니 하면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데, 내 눈의 홍채가 적응하며 발견한 것은 사람들 뿐만은 아니었다. 구름 낀 해변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반짝이는 별 하나가 보였다. 여우별이었다. 처음엔 여우별처럼 하나만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 별 옆에 또 다른 별이, 다시 그 별 좀 건너에는 다른 별들이... 그렇게 하나둘씩 존재를 나타냈다. 알고 보니, 돗자리를 깐 사람들은 별을 촬영하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우리 부부도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꺼내 깔고 한동안 밤하늘을 행복하게 바라봤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날 흐린 밤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여우별이다. 나는 내가 본 별을 여우별이라 여겼지만, 사실 그 별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저 구름에 가려서, 혹은 나의 홍채가 어두운 밤을 위해 활짝 열리기 전에 미처 보지 못한 대상일 뿐이었다. 그 별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수백 광년을 건너왔으니, 절대적 시간 기준으론 이미 소멸했을 수도 있다!) 행복이란 어쩌면 그런 것 아닐까? 여행을 하면서 계획을 짜고, 동선을 살피면서 보냈던 그 시간들 동안 과연 나는 행복했을까? 물론,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양관식처럼 사는 삶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가족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지내다가, 정작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날 밤, 1100 고지에서 본 여우별은 내게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 줬다. 기대 없이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기쁨의 정도가 예측한 기쁨보다 강하다는 것. 그리고 갑자기 목격한 여우별이나 기대하지 않았던 고라니처럼, 이미 내 곁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내가 알지 못했던 존재들이 혹시 내게 소소한 행복을 주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