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표현에 서툴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의 표현에 불만이 많다. 가족들은 요샛말로 팩트 폭격하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이야기를 하라고 불평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눌변가라고 칭하며 변명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말을 잘하는데, 그래서 더욱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정도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쪽이 더 편하다.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안전추구 아닐까 싶다. 입에서 떠나 한순간 즉시 휘발되는 말보다는, 역시 글은 나의 실수를 수정할 시간을 벌 수 있기에 그런 건 아닌지 하고 자위한다. 서툰 표현은 내향적 성격 특성과도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 언제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의 흔적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과거로 올라가도 분명 난 여전히 부끄럼을 많이 타고 말 수가 없는 아이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모르는 사람들 앞에 나가 말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웠다. 어쩌다 남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있으면 얼굴이 화끈거렸고 약간의 패닉 상태도 왔던 걸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친구가 추천하여 반장 후보로 나섰는데, 말 한마디 못해서 고작 2 표 받았던 일도 있었다. 이후 난 스스로를 어쩔 수 없는 내향인이라 단정 짓고 포기하며 살아왔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은 무엇인가의 결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심리학 책을 읽다가 유아기에 겪었던 어떤 결여의 경험이 자신을 자책하는 형태로 굳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이 서툴고, 완고하고 권위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나. 프랑스 심리학자 리즈 부르보(Lise Bourbeau)의 심리치유서 『모든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를 읽으며 알게 된 원인은 부당함이었다. 어렸을 적 부당함을 당해 자아가 억제되면 권위적인 성격이 되며, 대부분의 심리적 상처는 부모에게서 비롯된다고 한다. 아이는 이 상처를 기억도 못 하지만, 기억을 못 한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는 우리의 뇌 속 어딘 가에 꼭꼭 숨어 잔존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오면 탁하고 발현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상처는 대표적으로 다섯 가지다. 거부, 배신, 모욕, 버림, 부당함이 그것인데, 내용을 보니 어쩌면 나의 상처도 부모님에게 왔겠지 하고 생각했다.
나의 어머니는 이북 실향민이다. 한국 전쟁 어린 시기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어머니는 5남매 중 막내딸이었지만, 외할머니 없이 살림을 꾸려야 했던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미처 제대로 돌보지 못하셨을 것이다. 대신 어머니는 나이 차이 꽤 있는 큰이모에게 컸다고 한다. 이모님들은 유난히 외할아버지가 어머니만 예뻐하셨다고 기억하시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사실일까? 하는 생각을 품어본다. 과자를 두고 작은이모와 싸운 일화를 기억하는 어머니는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언니하고 싸우면, 내가 숙자야 이 년아 내놔하면, 외할아버지가 항상 고저 고저 이 에미나이네 강짜를 누가 말리네 하면서 한숨 쉬곤 하셨지."
이 말을 들으면 어머니도 어딘가에 심리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 있음이 분명해진다.
이모님들 말씀대로 사랑을 온전히 받았다면 심리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어머니는 완고하고 고집 센 성격이시다. 아마도 이모들의 기억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무엇인가 부당함이 전수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님 세대도 당연히 조부모님에게 무엇인가 심리적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부모님 세대야 이렇게 간접적으로 유추라도 해 볼 수 있지만, 조부모 세대로 올라가면 짐작도 불가능하다.
세대를 거슬러 심리적 문제의 근원을 되짚어가자, 누구도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란 결론이 나온다. 지금이야 교육을 많이 받아 심리적으로 어떻다 저떻다 단정할 수 있지만, 한두 세대만 올라가도 단순한 사실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지, 어디 아이들 심리까지 돌볼 겨를이 있었을까? 게다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분들을 욕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특히 외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못한 채 성장한 우리 어머니라면 더욱더 그렇다. 투박한 말투 뒤에 숨어있는 어머니의 본성은 따뜻하고 온정이 넘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툰 표현은 곧잘 남에게 상처를 준다. 나 역시 그랬는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전달해 주변의 사람들이 마음이 상하는 일이 많았다. 돌이켜 보면 살면서 그랬던 순간들이 많았다. 나의 다듬지 못한 뾰족한 표현들이 그대로 그들에게 박혔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투박한 표현에 가장 큰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은 우리 가족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괴로워했을 그 시간들을 생각하니,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위로해 주고 싶다.
더불어, 사과와 위로 보다 중요한 것은 노력이지 싶다. 서툴지만 작은 표현들을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야겠다.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생각만 해도 오그라드는 이 표현들을 생활 속에서도 자주 하자 마음먹는다. 잘 안되고 어색하더라도 지레 겁먹지 말고 당장 오늘부터 실행해 보자. 내가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할 유일한 존재인 가족들에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색해서 변명같이 한 마디를 덧붙여 본다.
"미안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잘 몰라... 그리고 사랑해 우리 가족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