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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ug 17. 2022

막존지해(莫存知解)

카페에 오는 이유


휴일, 차를 몰아 근처 대형 베이커리 카페에 왔다.

나는 자주 카페에 와서 책을 읽는 편이다. 근처에 좋은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 사실은 카페에서 독서를 하며 느끼는 한적함과 그 여유로움은 여타의 다른 여가 활동에서 얻는 에너지와 안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나는 어디를 여행 가기만 하면 그 주변의 1번부터 끝 번호까지 꼭 가봐야 할 명소를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과, 입장료 등 금액을 정해 리스트를 만들고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이러한 기질은 아내가 나를 좋아한 이유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질려버리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몇 해 전 여름휴가로 제주도에  갔을 때 무계획으로 간 적이 있었다. 우리의 삶에 해야 할 것만 넘쳤는데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만났던 순간이었다. 거기서 요샛말로 '바다멍'을 경험했다. 한적한 한 카페에 자리 잡은 썬 베드 비슷한 널찍한 자리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발장단을 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유유자적하는 그 기분을 나이가 거의 오십에 이르러서야 느꼈으니, 얼마나 딱한 인생인가?


카페를 찾으면 으레, 그  특유의 '구석' 기질이 발현하여 넓디넓은 카페 한가운데를 뒤로하고, 언제나처럼 구석에 책 읽기 좋은 장소를 택해서 자리를 잡는다. 이는 아내가 나와 똑같은 기질은 아닌 것 같다. 때문에 항상 좋은(?) 자리를 찾는 순간에는 아내와 선호하는 자리를 두고 실랑이가 일어나는 편이다.


사실 아내는 지역 정치 모임에도, 아파트 주민 회의에도, 그리고 부조리한 것이나 위험한 것이 있으면 공공기관에 전화를 해 시정을 종용하는 소위 '행동하는 언니'이다. 적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과 왠지 '구석'을 찾는 나의 행동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기에 '구석'을 찾는 것은 언제나 주목받는 것과 나서기를 싫어하는 나의 기질에 아내가 맞춰주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아무튼 어김없이 나는 '구석'을 찾아 매의 눈으로 실내를 스캔한다.


카페에서 들어와서 조용히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행동은 마치 거친 사바나에서 나만의 안식처를 찾는 행동과 흡사하다. 눈을 갸름하게 뜨고 멀리 바라본다. 전기 콘센트는 있는지, 책상과 의자는 책을 읽기에 적당한 높이와 구조인지,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구와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음악소리가 나오는 스피커와는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등이 그것이다. 나만의 선택 사항에 간택된 장소를 발견하고 찾는 행동은 사회의 경쟁에서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을 때의 기쁨에 비할 만큼 기쁨을 준다. 그것도 방문할 때마다 서로 다른 느낌의 장소를 찾아내는 기쁨은 다이내믹하면서도 절실하다.


다행히 요새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많아서 언제나 내 취향에 맞는 그 '구석'이란 놈은 있다. 좁은 동네의 카페에서 몇 시간씩 책을 읽으면 당연히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장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읽어도 종업원이 눈치를 주지 않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찾는다. 꼭 베이커리 카페여야 한다. 책을 읽다가 식사를 하기 위해 카페를 나갈 필요가 없는 그런 곳이 제격이다.


문득, 아니 편한 집을 놔두고 왜 굳이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와서는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소리가 없는 조용한 구석을 찾는가. 또, 그렇게 읽는 책은 잘 읽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언젠가는 책을 읽고 있는 우리 부부 옆에서 부러 큰 소리를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이 옛날에 책을 많이 읽었는데, 요새 먹고 살 만해지니 독서 붐이 불었다는 둥. 사실 책은 책이고 실제의 삶을 다르다는 둥, 얼굴과 입을 우리에게 향하지 않았다 뿐이지, 우리 부부에게 훈계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짜증이 났지만 더 독서에 집중하는 듯 자세를 취하며 응수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가 일어나며, '옆에서 떠들어서 미안해요'하며 멋쩍은 웃음을 보여줬다. 마치 이렇게 떠드는데 책에 푹 빠진 독한 부부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어느샌가 우리의 카페 문화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독서족이다. 카페가 대형화되고 또 단순히 지인들과 만담을 나누던 기능에서 벗어나 요즘의 카페는 여러 가지 기능을 준다. 먼저 단순히 콩을 볶아 커피를 내리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제공하던 기능에서, 좋은 풍경을 선사하여 찾는 이들에게 풍경이 주는 감동과 경외감을 손님들에게 제공한다. 또, 잠시 왔다 가는 꼭 정거장 같던 문화에서 체류 시간이 길어져 손님들은 거의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카페가 제공하는 편안한 힐링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커피만 팔면 안 된다.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여 간단한 브런치나 베이커리류를 준비한다. 그리고, 때로는 공연을 선사하는 카페도 종종 있다. 당연히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독서 공간으로써의 역할이다. 물론, 카페라는 특성 때문에 도서관처럼 조용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책을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조명과 책상 그리고 각종 IT 기기의 전원을 연결할 수 있는 설비들을 완비한 카페가 많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책이 잘 읽힌다. 집에서 읽으면 자칫 나태해질 수 있지만, 카페에 오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맘대로 잘 수도 없다. 오히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읽고 있는 책에 집중할 수 있다. 남들이 보니까.. 또, 예의 그 몰지각하고 시끄러운 이웃 손님의 행패라도 경험하면 오기가 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들려오는 약간의 음악 소리와 소음은 오히려 집중에 도움이 된다. 어느 정도의 소음 속에서 오히려 집중력이 좋아진다는 어느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고, 나는 이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오히려, 소음을 이겨내고야 말리라는 일종의 도전 의식이 생기기도 해서, 옆자리 수다스러운 방문객이 앉게 된다면 가방 속에 이어폰을 꺼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 그만이다. '나는 안 들려, 많이 많이 떠드세요'하고 마음속으로 웃어넘기면 그뿐이다. 사실, 카페란 원래 떠드는 곳이니,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책, '행복한 건축'에서 건물은 우리에게 말을 한다고 했다. 오늘 방문한 카페처럼 회랑이 높고 실내 식물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흡사 집이 주는 안정감과 비슷하다. 집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면, 내가 무엇을 해도 집은 나를 언제나 받아주고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집이 주는 편안함이 과하여 종종 나를 나태로 이끈다. 똑같은 책을 봐도 집에서 보면 한두 시간 안에 스르르 잠이 든다. 그런데, 카페에서는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하고, 또 카페마다 특유의 기운이 있어서 마치 나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라는 임무를 주는 것 같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라고 스탕달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에 아내와 동반자 의식도 한몫한다. 만약, 아내가 독서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주말이나 휴일에 이렇게 한적한 카페에 와 독서를 즐기는 기쁨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노력도 한다. 휴일이면 나랑 놀자고 아침도 해 먹이고 청소도 하고 집사람에게 '나 오늘 내 숙제 다했어요'라는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백이면 백 집사람은 식후 카페행에 동의한다. 사실, 나보다는 아내가 더 독서에 집중하는 편이다. 피아노 강사로 평범하게 살던 그리고 늦은 나이에 새로운 전공 공부를 해서 지금은 공예 관련 프리랜서로 활약 중이다. 중년에 나이에 새로 도전한 학위만 사회복지와 농학과 두 개째이니 한수 배워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아내가 공부하는 동안 멀뚱멀뚱 휴대폰이나 보고 있다가 책을 읽게 된 것이 지금처럼 '독서에 올인'한 계기다. 즉 혼자 공부하게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같이 카페를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서당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 것'이 아니라, '카페 대기 남편 삼 년에, 독서광이 된 것'이라고 할까?

오늘처럼 연휴의 끝에는 집에만 있으면 지치게 된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하나 짚어 들고, 가까운 카페에 나아가 독서를 해보면 어떨까? 카페가 주는 아름다움을 맞추는 행복과, 내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찾는 탐험가 의식으로 무장해서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이유와 근거를 접어 두고라도,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함께 카페를 방문하는 기쁨은 어느 것에 비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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