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과 닻내림효과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 영화에서도 첫 장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관객이 처음 영화와 만나는 순간이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첫 장면을 이야기할 때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먼저 1998년 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전쟁영화이다. 영화는 시작하자 마자 빗발치는 총알과 폭탄의 세례속에서 해안에서 육지로 상륙하는 병사들을 보여준다. 피가 튀기고 팔과 다리가 폭탄에 의해 끊어진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처참한 장면이 화면 가득 채워진다. 이 영화는 강렬한 초반 전쟁신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 '다크나이트'도 영화 초반 히스레져가 연기한 조커의 강렬한 등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조커는 등장하자마자 은행 하나를 통째로 털고 은행을 함께 턴 동료들을 전부 죽인다. 조커의 광기와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주는 오프닝이다. 뒤이어 제작된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예고편이 강렬했는데 악당 베인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미식축구 경기장. 베인과 배트맨의 최후의 결전을 암시하는 전투 장면등이 인상적이었으며 '전설이 끝난다'라는 문구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의 예고편 역시 영화에 대한 관객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흥행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행동경제학의 바이블로 불리는 책이 있다. 바로 사상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천재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책 내용 중 '닻내림 효과'가 설명되어 있는데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듯 처음 입력된 정보가 정신적인 닻으로 작용해 이후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두가지 계산식이 있다.
첫번째 식은 1부터 8까지 차례대로 곱하는 것이고 두번째 식은 반대로 8부터 1까지 역순으로 곱하는 것이다. 정답은 당연히 동일하다.
이 두가지 식을 보여주고 암산으로 5초 이내 계산하도록 했다. 여러 실험자들에게 실험한 결과 첫번째 식으로 계산하여 이야기한 답의 평균값은 512였고 두번째 식의 답의 평균값은 2,250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암산으로 5초내에 답을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을 해서 정답을 맞추는 것은 보통 불가능하다. 대략 첫번째 식은 1곱하기 2 곱하기 3곱하기 4까지 곱해서 나온 숫자 24을 가지고 정답을 유추하게 된다. 반면 두번째 식은 8곱하기 7은 56까지만 계산이 되고 56으로 정답을 예측하게 된다.
즉 정답을 유추할 때 기준이 되는 값이 첫번째 식은 24, 두번째 식은 56으로 차이가 나고 24와 56이 닻이 되어 정답을 예측하기 때문에 예측치에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강의를 할 때 실제 수강생들에게 두가지 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거의 대부분 첫번째 식보다 두번째 식으로 정답을 유추한 숫자가 훨씬 컸다.
참고로 위 식의 정답은 40,320이다. 생각보다 정답의 숫자가 크다.
닻내림효과는 실생활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거래 대행인들이 집의 가치를 평가할 때 무려 41%가 매도호가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닻내림효과는 이처럼 돈과 관련해서 내리는 결정에 강력하게 작용한다. 예를들어 기부액을 묻는 질문에 '5달러를 기부하시겠습니까?'라로 물었을 때 평균 20달러를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다소 높은 '400달러를 기부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는 평균 143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이처럼 높은 닻과 낮은 닻을 접한 집단들이 제시한 기부금의 차이는 무려 123달러였다.
닻내림효과는 처음 만남에서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준다. 첫인상이 닻이 되어 우리가 평가되기 때문이다. 첫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정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표정을 먼저 보게 되고 밝은 표정으로 웃은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두번째는 행동이다. 행동이 너무 과하거나 혹은 너무 소극적이면 그 행동대로 본인의 이미지가 상대방에게 각인되어 진다.
마지막은 말이다. 첫만남에서 긍정적인 대화를 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고 부정적인 대화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된다.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면 첫인상의 중요성을 잊지말자.
오늘부터 영화를 볼 때 첫 장면을 유심히 보고 감독이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그 영화를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할 때 나도 모르는 닻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 살펴보는 것도 잊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