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의 MBTI는 무엇일까?
어려운 시대는 영웅을 알아보는 법입니다. 이성계가 나고 자란 곳은 전쟁이 일상이었던 험악한 변경 지역, 함경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은 역으로 이성계에게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성계가 태어났던 당시의 고려는 안으로도, 밖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북쪽에서는 중국 원나라의 반란 세력인 홍건적이, 남쪽에서는 일본의 해적 집단인 왜구가 날이면 날마다 쳐들어왔지요.
그러나 당시 고려 정부에게는 국방을 엄히 다스릴 힘이 없었습니다. '송곳을 꽂을 수 있는 한 뼘의 땅조차 없다.' 백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라의 운영을 책임져야 할 관리들은 가난으로 울부짖는 백성을 가혹하게 수탈하며 날마다 배를 불렸습니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니,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건 당연히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외적의 침입을 당한 지방 곳곳은 저마다의 힘만으로 국방을 지켜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혼란하던 시절, 190cm에 달하는 신장으로 말을 타고 전장을 자유로이 누비며 백성을 철통같이 지켜준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성계입니다. 매 전투마다 귀신같은 활솜씨를 뽐내며 승리를 거머쥔 영웅 이성계는 신처럼 활을 잘 쏜다는 의미인 '신궁'이라는 별칭으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하루아침에 인싸가 되었습니다.
"이만한 군대로는 못할 일이 없다." 이름마저도 '도전'적이었던 그,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정도전이 이성계와의 첫만남에서 자신있게 내뱉은 말입니다.
이성계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고, 그를 바라보는 고려 정부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를 원치 않았던 이성계는 날마다 정부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놓인 난처한 상황을 눈치채고, 새로 올 미래를 그리며 이성계에게 줄을 대고자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도전의 회유에도 이성계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성계의 충심을 돌린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고려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성계를 곤경에 빠트리고자 중국 명나라의 영토, 요동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배테랑 장수였던 이성계는 대번에 이 전투가 승산이 없는 싸움임을 깨닫습니다. 곤경에 빠진 이성계는 결국 요동으로 가는 길목인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휙 돌려 돌아옵니다. 마침내 고려 정부를 배신할 결심을 한 것이지요.
돌고 돌아왔습니다. 당시 백성의 염원이었던 토지 개혁을 이룬 이성계는 고려 정부를 무너트리고 새 왕조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찾아왔습니다. 그전까지 뜻을 함께하던 정몽주가 새 왕조는 절대 안된다며 반기를 든 것입니다. 그동안 함께해 온 정이 있지, 이성계는 정몽주를 벌하지도, 설득하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냅니다.
이를 탐탁지 않게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이자 훗날 조선의 세번째 왕에 오른 이방원입니다. 이방원은 아버지와 논의도 하지 않은 채 선죽교를 건너던 정몽주를 무참히 살해합니다. 대의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 이방원의 차가운 논리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선죽교에서는 정몽주가 흘린 피가 스며 나온다는 으스스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라고 바라던 새 왕조가 드디어 빛을 보았습니다. 한반도의 역사에 길이 남을 500년 왕조, 조선의 탄생이었지요. 그러나 정몽주에서 시작된 피로 물든 서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나라를 세운 공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이성계는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정몽주를 처단한 이방원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정도전과 손을 잡고 이방원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데에서 나아가 이방원의 배 다른 동생이었던 막내 이방석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지요.
잠자코 있을 이방원이 아니었습니다. 이성계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과거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똑똑했던 이방원은 야심가 중의 야심가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성계의 아들들 사이에서 왕위를 둘러싼 치열한 살육전이 벌어집니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지요.
이방원에게 실망한 이성계는 그대로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는 고향 함흥으로 잠적해 버립니다. 이후로도 이방원이 화해를 청하고자 보낸 사신들을 모두 활로 쏘아 버렸지요. 이 이야기는 '함흥처사'라는 속담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500년 왕조를 일으켜 세운 신궁은 그렇게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짧게나마 이성계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변방의 시골 장수였지만 늘 주변의 사람을 끌어 모으는 힘이 남달랐고, 많은 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이성계(E), 스스로의 명성을 고려의 충신이라는 타이틀 아래 유지하고자 하였으나 변해가는 시대를 읽어내며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이성계(S), 냉철한 판단력을 앞세울 줄 알면서도 자신과 의견을 달리했던 주변 사람을 쉽게 내치지 못했던 이성계(F),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고는 하나 아들들 사이에 벌어질 피의 서사는 미처 예고하지 못한 이성계(P).
이러한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 이성계의 MBTI는 ESFP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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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초희입니다.
최근 '뉴닉'이라는 뉴스레터 플랫폼에서 'MBTI로 보는 조선 사람들'을 아티클 형식으로 각색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브런치에서도 연재하기로 결정했어요.
https://newneek.co/@shooin67/article/10880?utm_campaign=share&utm_medium=web&utm_source=article
글의 메인 이미지는 챗 GPT에게 제 글을 보여 주고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고증 면에서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저 재미로 봐 주세요 ㅎㅎ
많관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