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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Oct 28. 2022

(태교일기) 너의 존재. 태동

18주 첫태동 ~24주 

12주가 넘어서면서 조금씩 배는 불러와도 막상 너의 존재는 실감이 나질 않더라.

그나마 매주 초음파로 네 존재를 확인하던 것도 4주 간격으로 기간이 늘어나면서 언제든 갈 수 있는 집 근처 산부인과도 등록을 하고 2주마다 다녔어.

초음파로 보는 너는 이미 한 명의 사람 모양을 하고 발을 구르고 손가락을 꼼지락 하는데 그 움직임이 하나도 느껴지 않으니 답답할 나름일밖에...



17주6일이 되던 날(7월 22일) 자꾸만 장에 보글보글 가스가 차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변비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18주1일(7월 24일) 정확하게 배꼽아래 뭔가가 툭 치는 느낌이 들었어.

그게 난생 처음 내가 느낀 너라는 존재였어. 

내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그 강렬한 터치.

툭 치고 지나갔지만 느낌은 얼떨떨하고 놀랍고 신기했지.

나는 한동안 배를 보고 또 봤어.

그동안 보글보글 가스가 찬 느낌은 네가 내 뱃속을 차는 느낌이었던거야.

너의 태동은 그렇게 보글보글 -> 뽈록뽈록 -> 툭툭 -> 꿀렁꿀렁 + 가끔 에어리언이 휘감아 도는 듯한 느낌까지 다양하게 네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기 시작했어.


태동을 느끼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배를 만져보기 시작했어.

너의 안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니까.

기특하게도 너는 아침마다 잘 있다고 신호를 꼬박꼬박 보내주었어.


24주2일이 되던 9월5일.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리던 월요일 아침이었어.

배를 만지는데 차갑기만할 뿐 그날은 이상하게 너무 조용하더라.

30분 정도 누워서 계속 배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눌러봐도 움직임이 없어서 간이 초음파 기계로 너를 찾았어.

당황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초음파에 잡히는 소리가 내 심장인지 네 심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더라구.

당장 옷만 바꿔입고 네 아빠와 함께 동네 산부인과로 향했어.


비가 오던 그 아침 차를 타고 가던 그 길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저절로 기도가 나오더라.

'누구든 어떤 신이든 있다면 우리 아이를 지켜주세요!'

속으로 얼마나 빌고 또 빌었는지 몰라.


병원서 상태를 얘기하니 간호사가 침대가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고 배에 심장박동 탐지기를 채웠어. 

탐지기를 배 여기저기 움직이며 신호를 찾았어.

정말 그 시간이 얼마나 떨리고 걱정되던지......

그러다가 푸쉭푸쉭 130~140 정도 되는 뭔가를 탐지해냈을 때 탐지기를 묶어두더라. 

떨리는 마음에 "이게 아기 심장소리인가요?" 조심스레 물으니 "그렇다고. 잘 뛰고 있다"고 하더라.


이후에도 1시간 정도 심장박동을 기록하느라 누워있었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더라.

누가 보면 유난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유산의 트라우마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것 같아.

9시가 넘어 의사가 출근하고 초음파로 네 모습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

자세에 따라 태동이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안심시켜주는 의사선생님께 감사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 이후에도 한 동안은 아침마다 배를 만져보고 너의 안부를 확인하는 게 내 하루의 시작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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