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황금을 좋아하는 ‘노란 사람들’과지옥을 말하는 ‘검은 사람들’, 그들이 ‘자기 몸을 갈기갈기 찢는’ 자기학대자들이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삶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결핵에 걸려 있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며, 피로와 단념에 대한 가르침을 동경하게 된다.”
죽음이 걱정의 대상이 되면 죽기 시작하는 정신이 된다. 이들은 피로한 자신 또한 걱정하며 피로를 잠시 잊게해 줄 환상이나자신을 채찍질해 줄 환상을 쫓는다. 그들에게 조금의 피로를 더하는 것을 언제나 손실이자 죄악이기에 그들은 단념을 사랑하게 되고, 이로써 자기를 학대하게 된다.
차라투스트라가 분류하는 죽음의 설교자들은 다종다양하다.
“이렇게 말하는 부류도 있다. “분만은 고생스러운 일이다. 무엇 때문에 아직도 아이를 낳는가? 고작 불행한 자만을 낳으면서!” 그런 자들 또한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이다.”
지금 이 땅에서 번성하고 있는 이러한 부류 또한 삶보다는 죽음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낙타는 피할 수 없는 계단이다.
“너희가 말하는 근면이란 것도 도피책이자 자신을 잊고자 하는 의지렸다.”
그러나 그 계단에 눌러앉아 낙타의 삶을 찬양하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에서 도망치려 하는 의지다.
“만약 너희가 생을 보다 신뢰했다면 너희 자신을 순간에 내맡기는 일은 그만큼 적었으련만. 그러나 너희의 내면에는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내실이 없고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만큼 내실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삶의 과거와 미래를 잘라내야 순간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체계가 정한 정도를 벗어난 강도의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 자들, 그들에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생은 고뇌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너희도 이제 끝을 내도록 하라! 한낱 고난일 뿐인 생을 끝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