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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Jun 02. 2023

산허리에 있는 나무에 대하여

니체 읽기 AZ 8


 차라투스트라는 산허리에서 피곤한 몸을 나무에 기댄 젊은이를 만난다. 젊은이는 곧 차라투스트라에게 그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내가 높이 오르려고 마음먹은 후 나 자신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으며, 아무도 나를 믿지 않게 되었지요.”
“올라와보면 나는 언제나 혼자랍니다.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고독이라는 한기만이 나를 떨게 만들지요. 그런데도 나 이 높은 곳에 올라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젊은이는 산을 오르려는 자, 상승하려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와 연민, 그리고 외로움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괴로워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산허리의 나무에 대해 말한다.

“이 나무는 여기 산허리에 외롭게 서 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해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토록 드높이 자란 것이다.”

 뻗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바람에 뽑혀나가지 않기 위해, 깊숙이 뿌리내려야 하는 나무는 젊은이를 닮았다.


“그래서 그는 기다리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이지? 그는 너무나도 구름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정녕 첫 번갯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위버멘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위해 나무는 홀로 계속 뻗는 것이다. 번개가 내리치고, 나무가 몰락하면, 그것이 거름이 되어 새로운 나무가 자랄 것이다.


 젊은이는 차라투스투라가 말한 위버멘쉬를 향한 뻗음을 진리로 받아들이지만, 이내 비통하게 울고 만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를 안고 함께 길을 떠난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구나. 네 말보다도 너의 눈이 네가 처한 온갖 위험을 더 잘 말해주고 있으니.”

 젊은이의 눈, 그것은 상승하기를, 상승하기만을, 하루빨리 상승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쳐버린 피곤한 눈이다.


“너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 때문에 아직도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롭지 못해야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


“그렇다, 나 네가 처한 위험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청하오니 너의 사랑과 희망을 버리지 말라!”

 차라투스트라가 간청하는, 상승하는 젊은이가 처한 위험이란 무엇일까?


“그러나 명심하라, 고결한 자 한 사람이 모두에게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젊은이는 고결한 자다. 고결한 자는 그대로 흘러가는 모든 사람, 선한 사람들에게조차 불편한 사람이 된다. 그는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기 때문이다. 기존 가치의 관성이 편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고독 필연이 된다.


“고결한 자의 위험은 그가 선한 사람이 되는 데 있지 않고 뻔뻔스러운 자, 냉소적인 자, 또 절멸자가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아, 나 자신의 최고의 희망을 잃어버린 고결한 자들을 알고 있다. 그렇게 되자 저들은 높은 희망을 모두 비방하게 되었던 것이지.”

 그 필연에서 고결한 자의 위험이 발생한다. 외로움과 자기 연민에 울분이 생기고, 그에 지치면 고결한 자는 자신이 희구했던 가치를 탓하며 돌변할 수 있다. 창조의 반대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오르는 사람들이 피곤에 지쳐 사랑과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달래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원제: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방송

김준산 외, 〈니체 강독 2편〉, 《두 남자의 철학 수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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