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골 May 14. 2023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니체 읽기 AZ 7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피의 정신’, 들끓는 열정의 힘으로 쓰라고 말한다.


“한때는 넋이 신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사람이 되더니 지금은 심지어 천민이 되어가고 있으니.”

 한때 사람들은 신의 말씀이 담겼다는 글만 읽고 썼다. 적어도 그들은 그들이 존대하는 신의 말씀을 읽고 썼기 때문에 극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점차 생각이 무딘 자들이 읽고 쓰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독자를 아는 자는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원인은 고분고분한 작가들이 남들에게 쉽게 읽히는 글만 쓰는 데 있다.


“낯선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을 뒤적이며 빈둥대는 자들을 미워한다.”

 사람들은 ‘낯선 피’를 이해하기 싫어한다. 세균이 침투한 몸의 면역반응처럼 강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자신과 다른 열정을 마주하고 견뎌내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상정하고 체념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술술 읽히는, 영리하게도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의 글만 읽게 된다. 피로 쓰이지 않은 글은 피를 끓게 할 수 없기에 독자는 편안하게 책을 뒤적이며 빈둥댈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러한 관성에서 벗어나고 말하며, 자신이 어째서 ‘피의 정신’으로 글을 읽 수 있는지 알려준다.

“높이 오르려 할 때 너희는 위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이미 높이 올라와 있는 나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너희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높이 올라와 있을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체념을 집어삼킬 긍지를 상기시킨다. 읽는 사람에게는 가치 결정하는 권력이 있다. 권력을 무기로써 기꺼이 집어들 때 독자는 전사의 긍지를 얻을 수 있다. ‘낯선 피’를 마주해도 웃음을 잃지 않 외려 격렬해질 수 있다.


“지혜는 우리가 용기 있고, 의연하고, 냉소적이며 난폭하기를 소망한다. 지혜는 여인이고, 그리하여 늘 전사만을 사랑한다.”

 읽는 사람이 ‘경쾌하고 어리숙하고 사랑스러우며 발랄한’ 전사라면, 피로 쓰인 글은 그에게 지혜를 선물할 것이다. 반대로 독자가 ‘엄숙하며, 철저하고 심오하며 당당’하다면, 글은 곧 그를 피하고 나른하게 만들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원제: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매거진의 이전글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