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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May 07. 2023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니체 읽기 AZ 6


 차라투스트라는 ‘얼룩소’의 판관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창백한 범죄자를 본다. 그리 환희와 열정에 대한 오해를 한탄한다.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그 자신이 겪은 괴로움을 이용하여 남을 괴롭히려 하는 것이다.”
“보라, 이 가련한 신체를! 그가 무엇으로 인해 고뇌했으며 무엇을 갈구했는지를 이 가련한 영혼이 자기 나름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것을 살인의 즐거움으로, 또 비수의 행복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얼룩소’라는 도시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이성이라고 부르는 도덕관념이 그가 광기라고 부르는 열정을 억누른다. 열정이 넘치는 자, 곧 광기를 가진 자는 이성이 주입하는 죄책이라는 질병에 시달리다 열정을 곡해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남을 괴롭히려 한다고 생각한다. ‘비수의 행복’에 대한 충동은 그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고, 죄책감의 요구는 그살인의 명분으로 삼을 강탈을 범하게 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판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적’이라고 부를지언정 ‘악한’이라고는 부르지 말라. ‘병자’라고 부를지언정 ‘비열한 사람’이라고는 부르지 말라. ‘바보’라고 부를지언정 ‘죄인’이라고는 부르지 말라.”

 차라투스트라는 창백한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른 근본적 원인이 범죄자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범죄자를 죽임으로써 그 원인이 사라져야 하지만, 언제나 다른 범죄자가 다시 나타난다. 범죄자를 악하고 비열한 사람이라 치부하는 구조 속에서 범죄는 지속되는 것이다. 그를 차라리 바보라 부르고 그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느끼는 비통한 심사로 하여금 위버멘쉬에 대한 사랑이 되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가 아직 살아남아 있다는 그 사실을 정당화하도록 하라!”

 창백한 범죄자를 처형함으로써 불편하고 비통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해서 사유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열정을 오해 없이 인정하고 가책 없이 받아들여 과업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위버멘쉬로 이끄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그것이 판관, 너희들이 살아남아있는 정당한 이유라고 말한다.


“나는 급류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난간이다. 누구든 잡을 수만 있다면 나를 잡아도 좋다! 그러나 나 너희를 위한 지팡이는 아니다.”

 휩쓸리거나 짓눌릴 것 같을 때 차라투스트라는 잡을 수 있는 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팡이가 아니므로 의존해선 안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원제: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방송

김준산 외, 〈니체 강독 2편〉, 《두 남자의 철학 수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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